집안에서 만보 걷기
고등학교 청소 시간의 기억이다. 한 달에 한 번 청소 담당을 바꾸는 날이 있었다. 인기 있는 종목은 책상 끌기.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짐작해 보면 책상을 밀었다가 제자리로 돌려놓는 그때만 일하면 나머지는 쉬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인 것 같다. 일종의 벌에 가까웠던 화장실 청소를 제외하면 다들 꺼리는 건 쓰레기통 비우기였다. 다른 청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데다가, 무거운 쓰레기통을 들고 밖에 있는 쓰레기장까지 다녀와야 하니까. 때로는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닦아야 하는 것도 곤욕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쓰레기통 닦는 게 뭐가 대수냐, 열 개도 닦겠다 싶지만.
아, 역시 열 개는 좀 많은가.
그밖에도 교실 청소의 핵심인 빗자루질, 대걸레질, 복도 청소 같은 항목이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그중에서도 창문 닦기였다. 창틀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지만, 창 닦기 자체가 주는 희열이 있었다. 물 먹은 스펀지로 먼지와 손자국을 지우는 일, 탁해진 물을 스퀴지로 밀어내는 일, 스퀴지가 지나간 자리를 신문지로 없애는 일. 이런 작업을 반복해서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돌리는 일이 좋았다. 다른 걱정은 접어두고 눈앞의 과제에만 몰두하면 되는 육체노동 시간이 고등학생에게는 힐링 타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닦고 있으면 높은 확률로 그때가 떠오른다. 아, 나는 원래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왜인지 모르게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집안에서 하는 일은 다 집안일이고 그걸 하는 사람은 모두 주부이지만, 다들 원래 좋아하는 일과 원래 싫어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수도꼭지 닦기를 좋아한다. 작은 수고만 들여도 금방 깨끗해지는 점이 좋다. 마음이 여유롭고 몸도 한가할 때는 오며 가며 하루에 몇 번씩 닦고선 전등불 아래 반짝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전히 창문 닦는 것을 좋아하고, 거울 닦는 것도 좋아한다. 세면대와 욕실 청소 대부분이 재미있다. 하지만 배수구 청소는 역시 좀 싫다. 먼지를 터는 것도 재미있고, 청소기 돌리는 것도 좋고, 물걸레질을 하다가도 보람이 느껴지지만 왜인지 현관을 쓸고 닦는 건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빨래를 널고 걷는 건 좋지만, 개는 것까지도 좋지만, 갠 옷을 서랍에 넣기 위해 들고 가는 건 그렇게 힘들다. 그러니까 자꾸 빨래산이……. 아무튼.
그래도 요리와 비교하면 청소는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밥 차린 지 10년이 넘었는데 끼니를 챙기는 것은 여전히 높은 벽이고 장애물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엌을 정리해야 드디어 하루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칼질하는 게 어렵고 성가시다. 한 그릇 요리 중에서도 제일 간편하다는 볶음밥이 그래서 가끔은 제일 손 가는 음식이 될 때도 있다. 샐러드 야채를 털 때도 늘 걱정이다. 제대로 물기가 날아갈까? 너무 털어서 다 뭉그러지는 건 아닐까? 양송이를 썰 때 손에 자꾸 버섯 가루(?)가 묻는 것도 싫다. 이상하게 잘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고기를 썰고 나면 칼과 도마와 손이 기름투성이가 되는 것도 싫은데 그렇다고 집게로 들고 가위로 자르면 그 순간 모든 게 어설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끈적거리는 것보단 어설픈 게 나으니까 요즘은 곧잘 집게와 가위를 쓰지만 누가 보면 밥을 대충하고 있다고 소문이라도 날 것 같아 민망하다. 이거 생활 팁에도 자주 등장하는 건데. 잠깐. 생활 팁이란 결국 대충 하기의 완곡한 표현인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이든 싫어하는 일이든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야 때가 되면 착착 시작해 끝낼 수 있지만, 싫은 일은 하기 전에 이미 싫은 마음이 드니까 자꾸 피하게 된다. 외면하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어진 무언가-비누 때 얽힌 머리카락이 꽉 찬 배수구나 기름 떨어지는 환풍기-를 처리해야 하는 것도 결국 나다. 방치된 집안일은 악화에 가속도가 붙는다. 머리카락이 떨어진 곳에는 먼지가 엉겨 붙고, 손질하기 귀찮아 그냥 냉장고에 넣어 버린 식재료는 빠르게 상한다. 아, 이렇게 될 걸 알면서 모르는 척 곁눈질만 하고 지나간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그리고 그 무엇 하나 내 손을 쓰지 않으면 원상 복귀되는 게 없는 집안이라는 것에 새삼 놀라고 마는 것이다.
마음가짐이나 기분은 사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어떤 일이 하기 싫을 땐 하기 싫은 스스로를 게으르다 탓하기보단 하기 싫은 그 일을 고치는 게 낫다. 예를 들어 하수구 청소가 싫은 것은 왜인가? 젖은 머리카락이 손에 붙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른 신문지를 세면대 밑 수납장에 넣어두고 청소할 때마다 잔뜩 꺼내서 머리카락을 집는다. 갠 옷을 서랍에 넣는 게 싫은 것은 왜인가? 애들이 엉망으로 뒤집어 놓인 서랍 속을 보면 짜증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애들 옷은 애들 보고 넣으라고 시키자. 칼질이 싫은 것은 왜인가? 흠. 칼질을 못하니까. 칼질을 갑자기 잘할 수는 없으니, 좋아, 칼을 바꾸자.
나를 돕는 건 나뿐이니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위해 고민하고 머리를 쓴다. 그러면 생각만 해도 피곤했던 일이 점점 좋아…… 아니다. 여전히 싫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