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차 Sep 02. 2020

자장자장 우리 아가

육아 십 년

  가정의 행복은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오고 불행의 양상은 제각각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지만, 육아는 그 반대인 것 같다. 육아의 행복함을 전해 들으면 저런 부분에서, 그런 순간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배운다. 반면 육아, 특히 영유아 육아에서 오는 괴로움은 몇 가지 범주에 수렴되는 것 같다. 먹이기, 재우기, 기저귀 떼기 등등등. 그중 도저히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꼽으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재우기다.


미숙한 우리 포유류의 새끼

  아이들이 진짜 아기였을 때 종종 다른 포유류를 새끼들을 떠올렸다. 기린이나, 말이나, 코끼리나. 그, 왜 태어나서 바로 걷는다는 아기들. 인간의 아기는 뭐가 문제일까. 걷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 잘 수 조차 없다니. 너무 일찍 배 속에서 나온 걸까. 3개월 정도 더 키웠다가 꺼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잠깐. 10개월 키우고 낳기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13개월은... 대체 진화는 뭐하는 것인가. 인류는 이대로 괜찮은가?

  처음에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하루 일과를 뒤돌아보고 졸린 거라고 추측한다. 익숙해지면 시간을 따질 필요도 없이 알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양육자는 배고파 우는 소리, 잠투정하는 울음,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신호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조금 뿌듯하다. 넌 지금 졸린 거야. 그 상태로 30분이 지나면 확신이 흔들린다. 안 졸린 거야? 뒤늦게 기저귀를 확인하고(30분 전과 달리 젖어 있거나 한다), 젖을 물려 본다. 결과가 시원찮으면 괜히 잠만 깨운 것 같아 후회가 막심하다. 

  조금 자라나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아기는 우는 대신 다양한 요구를 들이민다. 처음에는 대개 목이 마른 걸로 시작한다. 책을 아직 덜 읽었다거나, 방이 너무 어둡다거나, 옷이 꺼끌꺼끌하다거나, 화장실을 안 다녀왔다거나. 

  간신히 침대에 눕히면 이제부터 진짜다.

  우선 동화. 3세 청음 가능 버전으로 바꾼 떡 덕후 호랑이 이야기와 아이의 하루를 각색한 창작 동화는 내가 제일 쉽게 찾는 메뉴였다. 동요는 신청곡제로 시작했다. 같은 소리로 끝나는 단어를 끝없이 찾고, 어두운 방을 두리번거리며 한 쌍으로 완성되는 물건을 훔쳐보다가 아까 나왔던 어휘라는 불만이 제기되면 별로 겹치는 단어 없이 2절, 3절 이어지는 지브리 메들리로 갈아탔다. 아이의 흥분이 가라앉을 무렵부터는 반달, 섬집아기, 등대지기를 돌아가며 불렀다. 저 집 아기는 혼자서 스르르 잠든다는데 너는 왜 안 자니, 안 자니. 

  재우기 코스를 완주하는 데 한 시간은 기본이고 두 시간씩 걸릴 때도 있었다. 낮잠까지 챙기면 누굴 재우려고 하루에 네 시간을 쓰는 것이었다. 어두운 방에 앉아 아이의 몸을 두드리고 있으면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얼마를 차지할지 자꾸 계산해 보게 되었다. 그런 생각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루가 24시간 밖에 안 되니까.


왜 안 자니?

  아기도 딱하다는 생각을 했다. 바락바락 우는 날엔 더욱. 눈을 감으면 잠이 든다는 걸 아직 모르는구나, 엄마가 도와줄게. 하지만 솔직히 말해 울분이 자애심을 이기는 날이 더 많았다. 어느 날은 아기를 재우고선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베개를 던지며 울기도 했다. 물론 조용히. 아기가 깨면 큰일이니까.

  온갖 노력을 들여 아기를 재우고 나서 하고 싶었던 건 별 것도 아니었다. 밤이면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낮이라면 혼자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는 것. 바닥에 주저앉은 다리에서 쥐가 나고 동요 수십 곡을 불러 젖힌 목은 칼칼해졌다. 그와 더불어 커피 한 잔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면 마음이 한 구석부터 컴컴해졌다. 애를 재우고 뭘 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 계획성이 번뇌의 근원이다. 한편 커피 한 잔 마실 생각에 그 시간까지 견디었고, 그렇게 마신 커피 덕분에 그 날의 나머지 시간도 버틸 수 있으리라는 것도 진실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뭐가 중요한가. 자는 건 아기 마음인데.


  첫째는 잠 안 자는 것으로 친척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다. 너무 울며 자지 않아서 둘러업고 응급실에 갔더니 잠들어 있던 일도 있었다. 잠투정에 호되게 당한 어른들은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쟤 크면 그때 왜 안 잤냐고 꼭 물어봐라.”

  작년 무렵인가, 자기 싫다고 떼쓰는 두 동생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큰 어린이에게 “어휴, 안 자는 걸로는 널 따라올 애가 없다. 넌 그때 왜 그렇게 안 잤어?” 하고 물어보았더니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늦은 모양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