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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SHOP Jan 02. 2017

나는 나를 몰랐어요.

정자동 골목, Monte de Venus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에요. 세상에는 너무 많은 미용실이 있고, 다양한 디자이너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무심코 찾아간 미용실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어쩌면 우연히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해요.

진짜 그렇다니까요. 어쩌면 그 사람은 멋진 외모, 편안한 목소리, 센스있는 태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일 수도 있지만 서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은 그 사람 고유의 분위기가 나와 닮았다는 기분이 들 때가 아닐까 싶어요. 다르게 생긴 세상에 비슷한 우리가 되어줄 그 분위기 말이죠.

누군가를 잘 알아주는 건 그러니까 헤어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에요. 외모나 스타일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줘야 하기 때문이죠. 우연히 찾아간 이곳에서는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의자에 앉아서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만 듣는 것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Intro


몬띠드베누스는 정자동의 한적한 골목에 있어요. 지도상으로 탄천을 중심으로 유명한 정자동 카페 골목은 왼쪽에 있고, 몬띠드베누스는 반대쪽 주택가에 있어요.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동네에서는 이곳만 잘 보여요. 그러니까 눈에 띄는 외모에 관심이 더 생겼겠지만 뭐 어때요. 그냥 당연한 일이잖아요. 올블랙의 아웃테리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닐까요?





Taste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보통 예약제로 운영되는 미용실을 좁은 편이지만 이곳은 꽤 넓은 편이에요. 의자를 하나만 놓는다고 꼭 손님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고 느껴지는 건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쾌적해야 더욱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저는 자전거는 잘 모르지만, 무척 비싸게 생겼어요. 멋진 탈것의 리스트가 있다면 아마 최상단에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까 브롬톤 폴딩 미니벨로였어요. 가격은 직접 검색해보세요. 어떤 아이템이 자연스럽게 인테리어 역할을 하려면 그건 꼭 사용하는 것이어야 해요. 너무 대놓고 전시를 위해 전시 하는 건 매력 없으니까요. 사장님의 취미 생활도 아니고 출퇴근용으로 사용되는 자전거라는 소리에 더욱 눈이 갔어요. 선반 위에는 미니어처도 있어요. 몰튼 미니벨로래요. 누군가의 공간을 찾아가면 이렇게 취향과 취미와 일상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어요.





Detail



샵은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어요. 아주 모던해요.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평범하다는 말과 다를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몬띠드 베누스 모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공간 구성이 판에 박힌 느낌이 아니거든요. 일단 런웨이 처럼 불쑥 솟아있는 입구를 지나야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조명과 거울과 미용 의자가 모던한 컨셉에 맞게 잘 정리되어 있지만 놓인 위치는 달라요. 굳이 장소를 구분해 놓았다는 느낌보다는 여기 있으면 뭐 어때 하는 식으로.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여진 원장님의 카메라. 여자 손님들을 대상으로 Before와 After 사진을 직접 찍어서 블로그나 SNS에 업로드 하신다고. 남자 손님의 시술 사진을 업로드 하면, 너무 많은 남자 손님이 몰려와서 잘 안 찍으신다고. 네, 잘 알겠습니다.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는 미용 도구 트레이. 아무래도 이렇게 정돈된 장비들을 보면 마음놓고 머리를 맡겨도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어요. 연장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장인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Procedure


머리 감으러 미용실에 가고 또 매일 스타일링을 받을 수 있는 삶을 꿈꿔본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렇잖아요. 도대체 누가 머리 감겨주는 걸 마다하겠어요. 목이 뻣뻣해지는 아무리 불편한 의자라도 누워서 서비스를 받으면 그냥 기분이 좋잖아요. 근데 이곳의 샴푸 의자는 정말 최고예요. 인생을 윤택하게 해줄 아이템 리스트에 꼭 올려놔야겠어요.



잡지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다가 ‘어 이 헤어스타일이다!’ 하고 찾아 놓은 수많은 사진들은 제 핸드폰 사진첩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고요. 여전히 사진의 주인공들은 멋지고 잘생겼어요. 하지만 저는 아니잖아요. 거울은 거짓말을 하는 법을 모르고 저는 저를 보는 법을 몰라요. 그래서 오늘은 핸드폰에서 주섬주섬 사진을 찾지도 중언부언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저를 가만히 바라보는 원장님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한 시간 남짓 펌과 함께 컷트를 받았어요. 그냥 오늘은 나와 닮은 머리를 하고 싶었어요. 펌과 컷을 합쳐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어요. 미용실에 오면 과장된 내가 어색할 때가 있었어요. 20분간 드라이를 받고 세 가지 이상 헤어 제품을 발라주는데 어떻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을 사는 내가 아니잖아요. 머리를 말리고 가끔 왁스나 에센스를 바르기는 하지만 늦잠을 자거나 귀찮을 때는 머리만 감고 나서는 저는 보통의 사람이니까요.



시술을 다 끝내고 바라본 거울 속의 나는 정말 나다웠어요. 누군가를 흉내 낸 머리가 아니고 그냥 유행을 올려놓은 머리가 아니었어요. 화려한 누군가와 스스로 비교하면서 겪은 좌절의 시간이 머릿속을 지나갔어요. 그동안은 왜 그리 몰랐나 모르겠어요. 근데 오늘은 좀 나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한 줄 평

나 다운게 뭐냐고요? 그건 당연히 내가 모르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주 잘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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