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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정 Jan 16. 2023

일상일기(32)때늦은 신혼


다시 신혼이시겠어요?

아뇨 처음 신혼이예요 

둘만 산건 처음이예요


남편이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살던 집에

화장대 하나 갖고 들어가 신접살림 시작해서

나는 결혼이 시댁식구들 집에 

하숙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아이 둘 낳아 시어머니, 아가씨, 고모 손에 

의지해 키우며

남편도 사업, 나도 사업, 

각자 감당하느라 

우리 집엔 늘 7명 정도의 사람들이 오고 갔어요


함께 살려고 결혼한게 아니라

서로 짊어져야 할 짐을 나눠지려고 

결혼한 것처럼

애들일, 친정일, 시댁일 번갈아 터질때마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 볼 겨를 없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달리기하며 

바톤을 넘겨받아 

번진 불 끄고 고인 물 퍼날랐어요


가족들과 빙 둘러 앉아 공유하는 남편은 

내 남편이기 보다 

시어머니의 아들이었고 아이들의 아빠였어요

저도 남편의 아내로서의 자리는 순번에 없었고

애들 엄마, 친정의 딸, 시어머니의 며느리, 

회사 대표의 역할로도 버겁고 벅찼어요


“너없이 못 살아” 하며 결혼했는데

“너까지 왜 그래” 하며 

생사만 확인했어요

장롱처럼 조용히 신경 안쓰게 하는게

서로에게 최상의 서비스였어요


그러다 이제 비로소 둘만 살아요. 

둘만 밥해 먹고 치우고 산책하고 영화보고..

둘만있으니 서로에 대해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안 보였던 게 보여요 


이십대 연애때 철 없던 눈으로 

착각하고 오해했던 남편,

남편에게 환상만 있었던게 아니라

망상과 허상까지 있었다는 것을 

25년 넘어서 조금씩 알게 되네요


‘ 하루 이틀 살았나, 내 잘 알지, 

척하면 착이지’ 하며 흘려봤었는데

내가 여지껏 함께 산 남자가 

이 남자 맞나 싶게 낯선 모습을 만나고요

그간 참 무디고 무신경하고 무관심했구나 

깨달으며 미안하기도 해요


열정은 식고 설렘은 사라졌지만 

함께 감당한 세월만큼 

추억과 신뢰가 쌓여서 

고소하게 깨 쏟아지는 

젊은 신혼만큼은 아니어도

구수한 미숫가루만큼은 

때늦은 신혼 재미가 쏠쏠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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