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재주인 글쓰기로 밥벌이한 지,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운이 좋았다. 쓰고 싶던 글은 대부분 써봤고, 나를 성장시켜준 존경할 만한 리더들과 좋은 동료들도 여럿 만났다. 비매체 회사의 일원으로 글을 쓰며 월급을 받는 건 그 누구도 쉽게 누릴 수 없던 호사였다.
이제는 지쳤다. 글로 쓰고 싶은 대상을 잃은 건지, 글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던 마음이 바닥나 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돌이켜보면 나를 지치게 한 건 반복된 글쓰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끝내 납득되는 글을 쓰려 했던 나 자신이었다. 어디에 있더라도 끝내 내가 납득해야만 시작을 하고 끝맺음을 내야 하는 글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아마도 그건 제자리걸음만 이어지는 듯한 답답함 때문일 것이다. 주제만 다를 뿐, 늘 같은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서치랩 프로젝트를 할 때는 간만에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기분이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어떤 논거를 세울지,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를 오롯이 내 판단으로 결정했다. 분석 과정에서도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며, 내가 세운 논거의 합리성을 스스로 증명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을 정리하는 일을 넘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풀이를 쓰는 과정이었다. 그런 밀도 있는 경험이 오히려 지금의 무력감을 더 짙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 멈추기로 했다.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써서 두 달간 비워보려 한다. 오래전 누군가가 초반 10년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내가 걸어온 십 년이 끝인지 시작인지 확인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