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같은 외부적 자극(스트레스)에도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글을 썼다. 그리고 그 단단함의 기반은 체력, 정서적 안정감, 자기효능감이라고 결론지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한 과제를 실제로 일정 수준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기반이 올해 중순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복직하면서 다시 맡게 된 프로젝트가 종료 수순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복직 전부터 고대해왔고, 오랜만에 정말 의욕적으로 몰입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예기치 못한 전개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 이후,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들이 나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연이어 밀려왔다. 그 꼬리를 잇는 질문들은 결국, 내가 일터에서 쌓아온 자기효능감이라는 기반을 서서히 흔들어놓았다. 그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많지 않았다. 어떻게든 잠시 멈춰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택한 게 육아휴직이었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경로는 다르다. 남편은 가정 안에서 평온함을 느낄 때 일을 더 잘할 힘을 얻는다고 했다. 나는 일터에서 평온함을 느낄 때 가정을 꾸려나갈 힘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일터에서의 평온함을 잃은 상태에서 가정에 집중하는 건 나에게는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된 혼란이었다. 도피성 선택이었으니 이런 결과는 자명했다.
계속 우울해하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난 너가 진심으로 행복하면 좋겠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이 말은 결국, 내가 다시 자기효능감을 잘 찾아가길 바란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다시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일을 더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돌이켜보면, 내가 자기효능감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은 사람들과 성향적으로 잘 맞는다고 느꼈던 때였다. 서로 다른 역할과 관점이 조화를 이루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대화하고,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며 함께 일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나는 비로소 자기효능감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가 자기효능감을 느껴왔던 순간을 찬찬히 떠올려보고 있다. 어떤 환경과 관계 안에서 그런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는지를 되짚다 보면, 앞으로의 선택과 집중도 보다 분명해지겠지.
결국, 그 선택과 집중이 내가 진심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과 맞닿아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