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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샤나 May 31. 2020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 <타인의 침묵>과 5.18 민주화운동의 연결고리

아우슈비츠에 투옥돼 갖은 탄압을 보고 겪은 프리모 레비는 화학자였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지만 고향에 돌아가자마자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했다. 그가 펜을 든 이유는 자신의 증언이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레비는 자신이 생생하게 목격한 인권 유린의 현장을 누구도 믿지 않고, 없던 일로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이 다시는 일어나서 안되는 일이라는 공감대도 보편적으로 형성돼 있다. 이토록 잔혹하고 자명한 역사를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타인의 침묵>은 망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본래부터 자명한 역사란 없다. 하나둘씩 역사를 잊는다면, 증언이 명징한 사실을 담더라도 효력을 잃을 수 있다.


<타인의 침묵>을 보면서 여러 번 탄식했던 이유는, 명백히 있던 것이 '없던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스페인을 군림했던 독재자 프란체스코 프랑코는 민주화운동에 나선 시민들을 탄압했다. 좌파로 낙인찍은 가정의 아이들을 납치해 우파에 입양시켰다. 그것이 좌파 유전자를 발현시키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인권적 범죄를 저질렀던 그는 현재 스페인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프랑코는 국립묘지의 가장 높은 곳에 안장돼 있지만,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한꺼번에 묻혔다. 그들의 무덤은 철망으로 둘러싸여 접근할 수 없다. 프랑코의 탄생일에는 여전히 축하곡이 길가에 울려퍼진다. 프랑코의 치적을 기념하는 박물관도 건재하다. 심지어 스페인 거리명은 독재정권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많다. 고문 피해자는 고문기술자와 아주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역사를 잊게 한 주범은 망각 협정이다. 프랑코가 물러난 후 국회에서는 그의 만행을 처벌하는 대신 잊기로 했다. 과거는 잊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더불어 독재정권에 가담한 사람들의 책임을 면제하는 '사면법'을 통과시켰다. 교과서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으니 스페인 학생 중 상당수는 프랑코의 만행을 모른다. 심지어 독재 정권 당시 어머니가 총살됐다는 아들도, 거리명에서 가해자의 이름을 지우는 것을 반대한다. 이같은 단체 망각은 역사를 증언하고 복원하려는 시도마저도 무력화한다. 한 조각가가 민주화운동을 한 시민들을 기리기 위한 조각품을 만들었다. 조각품은 총알이 박혀 훼손됐다. 조각가는 총알로 인해 그 작품이 완성됐다고 말했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장면이었다.


5월 말은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주간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책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날을 되새긴다. 5.18이 자명한 역사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시민들은 처음에 '폭도'로 불렸으며, 18일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광주 사태'로 기록됐다. 그러나 고통스럽더라도 그 날의 만행을 되새기려는 시도가 반복됐다. 청문회에서 증언이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일관되게 기억하고 증명하려 노력한 덕분에 5월의 그 때는 교과서에 실리는 역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진상들이 많다. 헬기 사격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미국이 진압을 묵인했는지, 죽어간 사람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여전히 '자명하지 않은 영역'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5.18을 부정하려 한다. 이같은 역사부정은 스페인에서 보았듯이, 단순히 잘못된 인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혐오와 테러로 이어진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부르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종종 유가족이나 지역민을 향해 혐오표현을 쏟아내는 것이 대표적 예다.


20대 국회에서는 한국판 홀로코스트 처벌법이 논의됐었다. 5.18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표현을 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이다.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게 이 법은 스페인의 '망각협정'과 대치되는 '기억협정'이다. 진실에 일종의 '못 박기'를 하는 것이다. 혐오표현으로 인해 잃는 것이란, 처음에는 개인의 존엄이겠지만 계속 방치하면 역사 자체가 될 수도 있다. 혐오가 방치되어 정당한 감정으로 인정받는 순간, 거기서 역사 부정이 시작된다. 즉 혐오표현은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 혐오표현이 담고 있는 감정과 왜곡된 사실은 처벌을 통해서라도 바로잡아야 우리는 계속 기억할 수 있다. 잔혹했던 역사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시민은 매년 기억할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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