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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07. 2019

부부의 유학: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 한다

생계형 파리 유학기

한국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들고 프랑스에 유학 왔다. 나는 자취하며 4년, 남편은 부모님 집에서 살며 2년간 저축한 돈이었다. 알뜰하게 살면 2년 반 내지 3년을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현지에서 일을 해보는 것도 좋으니 모자라는 예산은 그때 벌기로 했다. 



파리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내게 주어진 의무가 없고 내 하루의 모든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물론 일하는 것이 좋고 앞으로도 일을 할 것이다. 내 역량을 적재적소에 발휘해서 결과를 얻고 그것이 사회에 (부디)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내게 경제적인 대가를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날마다 출근해서 월급 받는 일상이 턱, 답답해지는 때가 온다. 내 속을 더 채우고 싶은데 지금 내 자리에선 그것이 어려워 보이는 때. 새로운 경험과 동기가 필요한 때. 나와 남편에게는 그런 때가 왔었다. 우리는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흐름을 따라보기로 했다.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기 전, 한국에서의 우리 생활이 유학 생활과 맞바꾸기에는 너무나 안정되고 값지게 느껴지기 전, 떠나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좋았던 건, 월급쟁이 생활로부터의 해방이 경제적 안정을 빼앗아갈 것임에도 그 선택을 감행한 것에서 느끼는 짜릿함도 있었던 셈이다.


선택이 우리의 몫이니 책임도 우리의 몫이다.


돈은 너무나 쉽게 털렸다. 살던 대로 살았는데, 아니 외식은 덜 하고 술은 웬만하면 집에서 마셨는데. 여행은 거의 매달 했다. 그렇다고 1년간 쓸 돈을 가을이 올 때쯤 다 소진해버릴 줄은 몰랐다. 그마저도 우리 예산의 일부는 파리 월세집의 보증금으로 은행에 묶여 있었고, 나머지는 다음 해에 쓰려고 통장에 고이 남겨두었다. 그건 건드릴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노동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었다.



밖에서 피자 많이 먹었네.


다행히도 노동은 우리에게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긴 노동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학생이고 프랑스어 실력도 미천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별로 없었다. 가장 빠르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은 한식당 서빙이었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서, 몸도 머리도 좀 더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규칙적인 일상이 생활에 리듬감을 자아냈고, 몸과 정신에 어느 정도 주어지는 긴장이 나쁘지 않았다. 월급을 받는 기쁨은 자잘한 불만을 잠재웠다. 하루의 시간을 더 쪼개서 쓰고 있다는 만족감도 들었다. 인간은 역시 노동을 해야 하나 보다며, 밤 알바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는 함께 와인을 마셨다.


그러나 기쁨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나도 남편도 다시 일하지 않는 시간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집에 있고 싶은 날, 몸이 피곤한 날, 시험공부가 급한 날에도 월급에 상응하는 약속된 노동을 해야 했다. 한국에서와 같은 루틴이었다. 출근 전날, 가기 싫다고 괴로워하다가 막상 일하러 가면 적응된 몸과 머리가 알아서 작동하고, 이래저래 시간은 잘 흐르고, 한 주가 훌쩍 지나는 일상. 12월, 대학원 원서 제출과 프랑스어 시험공부가 겹치면서 아르바이트가 더 방해꾼처럼 느껴졌다. 일하느라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았고 마음만 괜히 더 촉박해져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남편에게 전해졌다. 어서 시험도 대학원 서류 작업도 끝나고 크리스마스 바캉스가 오기를 고대했다.


스트라스부르 기차역. 기차역과 공항은 언제나 설레는 공간. 


그러는 사이 2019년이 왔다. 바캉스 동안 여행을 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이제 곧 2019년 통장의 문도 열릴 것이다. 그렇지만 2018년을 살아봤으니 앞으로도 중간중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도 우리는 파리에 있다. 생계형 유학생이지만, 그것도 입이 둘인 부부 유학생이지만, 공부도 하고, 맛있는 빵과 버터와 와인을 먹고 마시고, 종종 문화생활을 즐기고, 이따금 여행을 한다. 그러기 위해 노동을 하는 건 충분히 할 만하다고. 



한밤의 피크닉.
락 페스티벌도 가고요.
We! are! your friends! You'll never be alon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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