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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an 09. 2019

다시 백수가 됐다

길지 않을 부부의 자유시간

이제 곧 두 번째 퇴사를 맞이한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것뿐이니 퇴사라는 말은 좀 안 어울린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첫 직장 다음으로 가장 오랫동안 한 일이었다. 군 복무를 위해 공익을 한 것을 제외하고 어느 조직에 속해 '사회 생활'을 한 것도 두 번째였다. 더군다나 한국 직장생활에 치이고는 "이제 한동안 일하지 않을 테다!"라는 포부를 품고 프랑스 파리로 왔으나 생활에 굴복하고 반년 만에 다시 경제활동에 나선 거였다. 여러모로 우리 부부에게 의미가 있었다. 동시에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다 같이 그만둔다 것. 왠지 '부부'스럽다. 한편으로 사장님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노엘 혹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니 한때 주인공이던 나무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버려져 있다.


1월 말까지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이후 우리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아내는 벌써 다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중이다. 벌써 면접을 본 곳도 있다. 아직 3주는 더 일을 해야 하는데도 벌써 다음 단계를 모색한다. 아내는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주로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는 박람회였다. 길어야 일주일 정도 일하지만 확실히 페이는 더 짭짤했다. 그 맛을 알기에 아내는 아르바이트 시간이 겹치는 데도 단기 알바를 뛰었다. 나 역시 그 맛을 알기에 아무 불평 없이, 아니 오히려 아내를 응원하며 아내 대신 아르바이트 대타를 뛰었다.


반면 나는 솔직히 말해 바로 당장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프랑스어 시험 통과가 시급한 까닭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게 더 크다. 앞서 몇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아껴 쓰면 3년 정도는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돈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목돈이 나가고 생활의 무게를 견디면서 너무도 빠른 속도로 소진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있는 것으로도 조금만 더 아끼고 버티고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는 "아니야. 너무 빠듯해. 올해 학교에 들어가면 더 많은 돈이 나갈 텐데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입장이다.


얼마 전 다음 아르바이트를 위한 면접을 보고 온 아내가 나에게 후기를 들려주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막 업무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걸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더라고. 그러면서 '아, 내가 이걸 다시 해야 하나...?' 싶더라니까."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안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건데 왜 다시 그 일선으로 나가야 하나?! 물론 돈은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오면서 가졌던 바람은 경제적 궁핍은 잠시 겪을지언정, 그동안 누리지 못한 우리의 시간을 갖는 거였다. 가끔 아내가 경제적인 문제로 너무 고민을 할 때, 혹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조금 더 편한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하고는 생각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일을 하며 벌 수 있는 돈을 포기한 대가로 지금 여기서 때로는 한량처럼, 때로는 정말 유학생처럼, 가끔은 약간 시크(Chiq)하게 있을 수 있는 거니까. 물론 그럼에도 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일을 구하려는 아내의 열정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며 응원한다. 아내는 우리 집의 대들보.! 이번 달 집세도 한 번 해보자! (참고 <나는 전업주부를 꿈꾼다>)


친구 네 집에서 본 바깥 풍경. 저 기둥은 뭔가 '군계일학' 같다. 괜히 위축드는 건 기분 탓일까...?


나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때론 충동적인 아내, 아내보다는 더 충동적이면서 때론 현실적인 나, 그게 우리 부부가 생활과 이상의 균형을 잡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아내의 이전 글 <부부의 유학 :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 한다>에 이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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