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가오는 한 해도-
연말이다.
이번 년도의 레이스가 끝을 보이기 시작하고, 다음 년도가 출발선에서 달릴 준비를 하는, 그리고 그 바톤이 이번 해에서 다음 해로 무사히 넘겨지기를 기대하며 바라보는 그 두근거리는 순간 말이다
매년 온갖 시상식과 TV프로그램으로 대표되던 연말의 분위기는 사라진지 오래이고, 이번 년 지나기 전에 보자던 송년회도 그 수가 확연히 줄었음이 느껴진다. 내게 연말은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라는 외침이 보다 잦아진 시기인 것이다. 이처럼 나에게도 연말의 의미는 두근거림은 커녕 시들...
아니다. 솔직해지자-
나라고 따듯한 연말을 보내고 싶지 않을 리가, 그저 현실이 그러지 못하고 있기에 ‘연말 의미 없이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연말, 누군가에게 함께 일을 하며 정신없이 이 연말을 보내버리자는 제안을 받았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으나, 곧바로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고, 나는 떠밀리듯 얼버부리며 그 제안에 동의하였다. 나의 한 해의 끝자락은 그렇게 바쁘고 빠르게 나를 지나가고 있다.
왜 우리는, 아니 '나'는 바쁘고 빠르게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도 내가 마음을 주고 있는 사람의 연락이 오지 않자 바쁘고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언젠가 전애인과 이별을 했을 때에도 바쁘게 지내면 괜찮다는 누군가의 조언에, 초단위로 살아가며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재미없는 수업 시간을 가장 빠르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역시 바쁘게 수업 외의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길게만 느껴졌던 3시간이 그렇게 부족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12월 24일에 술을 진탕 마시고 25일 새벽에 잠들면 빠르게 25일이 지나, 26일이 당신 앞에 와있을 것이라고.
이런 사고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게 바쁘게 연말을 보내버리자는 제안을 한 저 사람은 왜 굳이, 무려 금과도 비교되는 시간을 빠르게 '보내버리고자' 하는 것일까-
사실, 나도 이번 년도 연말을 함께 바쁘게 보내보겠냐는 그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저항없이 동참한 것은 (과연 그 속도 그러한지는 모르는 일이지만)행복해 보이는, 여유를 즐기는, 연말을 특별하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괜한 상대적 외로움 느끼지 않고 무사히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테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고나니, 오늘 오전 내가 보낸 이메일 마지막 문장이 떠오른다.
“따듯한 연말 보내세요~!”
나의 이메일을 받았을 그 누군가는 과연 따듯한 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라는 90퍼센트의 확신과 함께, 우린 과연 어떻게 이 연말을 그나마 괜찮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따뜻하게 보내질 못한다면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게 보내면 되는데, 그것은 또 쉽냐는 말이다.
이윽고 방금 전 나는 섣불리 “따듯한 연말 보내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번 일주일간 수도없이 서로 주고 받을, 그 따듯한 연말을 보내라는 힘없는 강요가 아닌, 당신의 일년이라는 레이스는 숨가빴으니 편안하게 다음 년도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내게 정신없이 연말을 보내버리자는 그 사람에게도, 오늘 오전 나에게 따듯한 연말을 보내라는 메일을 받았을 그 사람에게도, 오늘도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는 그 누군가에게도, 무엇보다 나에게도 편안한 연말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굳이 억지로 따듯할 필요도 없고, 따듯하게 보이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서운함을 느낄 필요도 없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시간을 온전히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라고 말이다.
위에 저렇게 시간의 흐름이라는 화두까지 가지고 와서 구구절절 적어 놓고 생각한 것이 겨우 '편안하라-' 라니, 필자의 창의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지라도 그 어떤 것 보다 편안한 게 최고라는 생각(우리는 그 어떤 좋은 여행을 다녀와서도 편안하다며 집이 최고라고 말하지 않던가!)을 지닌 나는 고집을 부려 오늘부터 모든 연말 안부인사를 '편안한 연말 되시라!'고 외칠 것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먼저 인사를 전한다-
부디 편안한 한 해의 끝자락을 보내길,
그리고 다가오는 한 해도 아무쪼록 편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