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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Feb 22. 2023

인생의 높이, 집 천장의 높이

내 방의 천장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인생의 높이, 집 천장의 높이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작으면 사람은 병이 듭니다.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죄수에게 징계를 내릴 때 '독방에 가둬!'라는 대사가 종종 나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죄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기도 하고, 식사량을 줄이거나 기타 다른 편의들을 금지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좁은 곳에 혼자 있는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겠습니다. '혼자 있으면 오히려 편한거 아냐?' 싶기도 하겠지만 생각보다 공간의 '비좁음'이 가져다주는 고립감과 상실감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집이라고 말하는 '주거'를 설계하고 만들 때, 주거 건축의 주거면적 기준이 존재합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선진국 반열에 들어갈 법한 나라라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최소 1인당 주거면적 기준은 과거 최소 10㎡이었다가 2011년에서야 14㎡로 상향되었고, 세계가족단체협회(UIOP)의 코노르, 퀄른은 16㎡, 국제주거회의(Frank Am Mein/1929년)에서는 15㎡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도시계획가이자 사회학자 숑바르 드 로브(Chombart de Lauwe)는 1950년 부엌과 욕실, 현관, 복도를 제외한 주거면적을 '순수 거주면적'으로 정의 하면서, 1인당 8㎡의 거주 면적은 거주자의 신체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1인당 가져야하는 한계기준을 14㎡으로 규정했고 표준기준을 16㎡으로 설정했습니다.


수치로는 체감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접하는 국민평형인 30평형의 아파트를 예를 들어봅시다. 30평 아파트의 공급면적(발코니, 공용복도, 주차장 등 포함)은 115㎡이고, 순수 주거를 위해 사용되는 면적은 85㎡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1인당 면적인 16㎡를 적용해보면 국민평형인 30평형의 아파트에는 5명까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체감이 될 수 있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6㎡는 4mX4m크기의 정방형의 공간이고 병리학 기준이라고 말하는 8㎡는 2mX4m의 공간입니다. 3mX3m가 조금 안되는 크기기도 하죠. 네 맞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도심지의 작은 원룸의 방이 이정도 크기입니다. 쪽방촌과 고시촌이라고 하는 곳들은 이마저도 되지 못하지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계기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네들의 현실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국민평형인 30평 아파트에서도 오래 살았습니다. 스물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면서 소위 원룸이란 곳으로 저 역시 입성하였고 첫 시작은 15㎡의 방(주방/화장실 등을 제외한 순수 방 면적)에서  두명이 같이 살았습니다. 이후로 군대다 유학이다 하며 계속해서 집을 옮겨다니며 8㎡정도 공간의 고시원에서도 머물러 보기도 하였고 반지하방이나 옥탑방을 전전하기도 했었습니다. 제 삶이야 비루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 부자집 도련님의 집에 머물거나, 초호화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물러 볼 수 있었던 덕에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그보다 넓은 공간의 차이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렴풋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작은 공간이 사람을 병들게 만들게 되듯 넓은 공간은 삶을 여유롭게, 인생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차이를 저는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도, 내 계좌에도 여유가 있어야 삶이 건강하고 풍족해지듯 공간에도 여유가 있어야 내 삶이 풍족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뇌 과학자 정재승씨는 '공간이야말로 그 사람의 인지사고 과정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최근 공간의 크기나 천장의 높이와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해 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는데, 미네소타대학교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는 실험을 통해 천장의 높이가 높아질 수록 창의력이 높아지고, 낮아질 수록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렇듯 공간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한 믿음은 제 개인적인 소견이나 건축가의 직관을 넘어 실증적인 과학분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신경과학과 건축학을 접목지켜 '신경 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라는 신생학문도 생겨났지요.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학, 네덜란드 드레흐트 대학교 등에서도 진행중입니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미국의 기업들은 경비절감을 위해 사무실 크기는 줄이고 천장고는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메타로 사명을 변경한 페이스북의 사옥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에 의해 무려 8m에 달하는 천장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창의력을 중요시하겠다는 명백한 의사표시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공간에 살고 계신가요. 국내 아파트 층고 기준인 2.2m 높이의 아파트 또는 빌라, 주택에서 살고 있지 않으신가요? 나름의 삶들을 잘 살아가고 계시겠지만 창의력을 높이거나 집중력을 높이는 과학적인 부분까지도 넘어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집의 천장이 30cm만 높다면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까?'


넣을 수 있는 가구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가구가 달라지면 수직적인 활동영역이 넓어집니다. 더 높은 책장을 오르기 위한 사다리 같은 것들도 필요해지겠지요.


맘에 드는 그림을 걸 때는 어떨까요? 그림의 비율과 감상하기 좋은 위치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조명은 또 어떻구요. 머리에 부딪힐까 가지지 못했던 예쁜 가정용 샹들리에나 모던한 디자인의 조명을 사기위해 고민하는 날들이 생길수 있을겁니다. 아 층간소음도 조금은 덜하겠죠? 여차하면 내가 방음재를 시공해버릴 수도 있을테니 말이에요.


상상하기로는 정말 사소한 변화들이지만 어찌될지 모를 일입니다. 국내의 법적 층고 기준이 2.2m에서 2.5m가 되어 생길 작은 변화들이 우리들의 삶을, 우리나라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설프지만 재미난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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