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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Aug 26. 2023

비움과 채움;Solid &Void space

인생의 포트폴리

비움과 채움 ; Solid & Void Space



건축 도면을 읽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 다양한 건축용어들과 기호들을 배우게 됩니다. 설계에서 쓰는 건축용어들은 영어를 많이 쓰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당시 영어에 약했던터라 수업과 과제를 따라가려고 꽤나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보면 건축업계를 기웃거리며 지켜본 바로는 건축 설계분야는 영어를, 시공현장에서는 변형된 일본어를, 건축이론과 역사에서는 한자어와 영어를 동시에 많이 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도면 읽기를 배우기 시작하면 건축도면은 공간을 수평으로 잘라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방향을 보여주는 평면도와 공간을 수직으로 잘라 옆에서 바라보는 방향을 보여주는 단면도를 가장 기본으로 보고 읽게 됩니다. 처음에는 벽과 빈공간의 구분을 배우고 기둥이나 계단의 구조체에서 가구와 보조 기호를 읽어가는 순서로 흘러가는데, 그 중에 특정 공간의 모서리를 X자 사선으로 연결해 표시해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립 익산 박물관 평면도>


 예를 들어 위 국립 익산 박물관의 1층 평면 속 전시실들을 예로 들면 각 공간들이 X자로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는 1층의 전시 공간은 소위 오픈스페이스(open space)라 불리는 열린 공간이란 뜻입니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박람회장이나 전시관을 방문하게 되면 뻥 뚫려있는 공간이라 느끼는 그곳들이며 광장이나 공원들과 같이 외부적으로 뚫리고 비워져 있는 공간 역시 오픈 스페이스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이 X자 선이 실선이면 위로 뚫려있는 공간. 점선이면 아래로 뚫려있는 공간이란 뜻이 됩니다. 익산 박물관의 2층 평면도에서는 아래 1층으로 뚫린 공간이 되어 점선으로 표시되겠지요.


이런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열린공간)를 보이드 스페이스(void space;아무것도 없는 공간, 진공)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각 단어를 구분지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여타 몇몇 유의어들과 마찬가지로  목적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됩니다. 오픈스페이스는 야외의 열린공간의 의미가 강하지만, 실내 정원이나 전시장과 같이 가변성을 가진 넓은 공간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하고, 보이드 스페이스 역시 도시 계획 관점에서 이야기 할때는 유형의 건축물 사이의 공원들을 오픈스페이스 대신에 보이드 스페이스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과 내용이 공간의 '열림과 닫힘'이냐 '채움과 비움'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목적에 따라 오픈스페이스와 클로즈 스페이스, 솔리드 스페이스와 보이드 스페이스로 사용하게 됩니다. 아래 엠버시 가든의 이미지와 같이 유형의 형태를 가진 건축물을 솔리드 스페이스, 그 사이의 보행, 녹지 공간을 보이드 스페이스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세밀하게 바라보았을 때는 하나의 방에서 콘크리트나 벽돌로 채워진 '벽'은 솔리드 스페이스, 그 벽들로 둘러싸인 방이라는 공간은 보이드 스페이스라고 할 수 있지만 외부에서 큰 시야로 바라보았을 때 보이드 스페이스였던 방은 건축물이라는 솔리드 스페이스 속에 묻혀 솔리드 스페이스가 되어버립니다. 이처럼 보이드와 솔리드의 개념은 목적에 따라 달라집니다.


<런던 엠버시 가든>



솔리드와 보이드의 개념은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기초개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공간을 구분짓고 용어를 정의하기 위한 개념으로서의 중요성은 아닙니다. 보이드와 솔리드의 중요성은 공간의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 만드는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흐름에 있습니다.


벽과 기둥이라는 솔리드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이라는 공간을 생각해 봅시다. 건축가는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서 솔리드인 벽이 더위나 추위, 비와 바람과 같은 외부 위험 환경을 막아줄 수 있도록 세밀한 두께와 재료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때때로는 무조건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을 조절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부인 보이드 공간에서는 그 속에 거주하는 '사람'이 서고, 앉고, 눕는 기본적인 동작의 범위에서 가구의 배치, 일조량, 공간적 심미성을 고려합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또 어떨까요. 도시를 걸으면 외부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빌딩건물은 하나의 솔리드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도로, 보행로, 공원, 안전과 법규에 의해 만들어진 빈 공간 등으로 불리는 보이드 공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에 도로가 너무 좁다면? 보행로가 3분거리의 직선거리를 건축물이라는 솔리드에 의해 둘러둘러 10여분 넘게 돌아가야 한다면? 공원이 너무 좁아 해도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위험한 장소가 된다면?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아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의 안전이 위협 받는다면 안되겠지요. 이처럼 건축가는 '솔리드'와 '보이드'를 인간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촛점을 맞춰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하는 고민을 언제나 품에 안고 실행하며 살아갑니다.


보이드와 솔리드에 대한 고민이 층층이 쌓아가다 보면 우리들은 거대화된 도시라는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도시계획을 정비하는 정부정책과 계획하는 건축가, 실행하는 시공기업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이드와 솔리드를 다루었느냐에 따라 도시의 모습이 참으로 많이 달라집니다.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아오른 마천루와 그 아래 길고 곧게 뚫린 신도시, 수백 수천년의 역사를 간직한채 전통을 지키는 낮고 오래되었지만 고풍스러운 저층 건물들과 도시의 흐름을 잇는 광장과 공원들. 우리들이 아름답다 생각하는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건축가나 도시계획가의 손길에 의해 계획된 곳들입니다.(물론 건축가의 계획이 아니더라도 산토리니, 스페인의 론다와 같이 전통에 지역의 특색으로 천천히 세워져 전통적 아름다움을 갖춘 도시들도 많습니다.)  반대로 혼란한 시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계획을 세울 틈도 없이 전통과 현재가 혼재되고 통일성을 잃은 난개발의 도시들은 슬럼가나 우범지대가 되기 일쑤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건물에서부터 도시계획으로까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인위적 공간의 아름다움과 편리함, 쾌적함 같은 것들은 보이드 스페이스와 솔리드 스페이스의 '조화'에서 출발합니다. 건축가들이 어떻게 보이드와 솔리드를 계획하느냐에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백년을 이어갈 인간의 터전의 행방이 결정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공간과 도시를 설계하는 건축가의 모습과 한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모습의 원론적인 방식에서 큰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득채워진 솔리드 공간은 한사람의 인생에 있어 열정적으로 채워가는 시간이자 경력과 자격으로 채워진 부분이 되고, 비워진 보이드 공간은 여유와 안식으로 쉬어가는 부빈이 되어주는 것으로 비교해 보는 것이지요. 하나의 도시처럼 한 사람의 삶은 채워진 시간과 비워진 시간의 조화를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드 공간와 솔리드 공간의 개념을 건축가의 계획의 유무에 따라 만들어지는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보면


1. 여유를 목적으로 하는 계획된 공간 - 공원, 광장, 휴양지와 같이 깔끔하게 정돈된 트인 공간

2. 열정(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계획된 공간 - 도심 속 빌딩, 설비집약 공장 등과 같이 정돈된 꽉찬 공간

3. 무계획적인 여유(나태, 게으름)로 발생되는 공간 - 사람이 살지 못하는 폐가, 흉가

4. 무계획적인 열정(범죄, 비효율)으로 발생되는 공간 - 범죄가 일상인 슬럼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민가


라는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결국은 계획적인 범주 아래 여유와 열정을 얼마나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발달된 미래지향적 고층빌딩의 숲 안에서 여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과 광장들로 이루어진 도시를 상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무계획의 영역에서는 암울한 모습이 예상되지요.(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적 공간은 별개입니다. 그 공간들은 '자연의 법칙'안에 인위적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요)


우리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릴적부터 극성스러운 부모에 의해 공부에 치어 살고, 성인이 된 후에도 대학 성적과 취업, 결혼과 육아 등으로 어느 한 부분 쉼과 여유가 없이 살아온 사람은 견고하게 꽉꽉 채워진 '극단적 솔리드 공간'의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여유가 없는 사람을 멋지게 바라보는 동시에 답답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반대로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아온 사람은 정돈되지 않은 굴곡진 허허벌판에 온갖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무계획적 보이드 공간'의 삶을 살았구나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삶을 설계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괜찮은 공간, 조화로운 도시를 설계하기 위해서 건축가들이 십수년에서 수십년의 연구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당장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급급한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들은 삶을 연구해고 계획해야 합니다. 보이드와 솔리드가 조화를 이루는 인생의 흐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의 도면이나 도시계획을 그려나간다는 것에 비교해 하나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쓰게 된다고 생각하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찾아야할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해 고민과 그 끝의 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욜로','플러팅'같은 단어로 치장된 보이드적 인생으로 쾌락이라 부를 수 있는 당장의 행복으로 미래를 망가뜨리는 삶이 행복은 아닐것이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여유를 위해 눈앞의 성과에 목매는 솔리드적인 삶이 결코 행복은 아닐테니까요.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을 쓴 김형석 교수는 행복이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현재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며, 현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열정과 여유의 조화에서 궁극적인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조금 더 계획적인 삶으로 현재를 아름답게 만들 준비를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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