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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ZI Nov 06. 2019

7.  슬픔 뒤엔


네가 죽기 전

오랜 시간 늙고 아픈 너를 보며

많은 준비를 했다고 믿었어.

너를 보낸다는 것에 대해 한참 몰랐던  같아.


사실 웃기지

너와의 이별은 처음 겪는 일인데 어떻게 준비를 하겠어.

리허설이 있겠어, 체크리스트가 있겠어?

할 수 있는 건 언젠간 떠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너를 잃고 난 뒤의 슬픔을 상상하는 것, 그게 다였어.


그래도 애써 준비된 척하려 했어.

부모님도 애써 겪어본 척했어.

오빠도 애써 용감한 척했지.

그렇지만 처음 겪어본 너와의 이별 앞에

우린 모두 어린애였어.


괜찮아지기 위해 노력해봤어.

이제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있을 때 잘하지 이제 와 울어봤자

너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나의 슬픔은 이기적인 감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 신기하게 눈물이 안 났어.

너를 보낸 마지막 날 딱 하루 펑펑 울고

그 이후론 울지 않았어.


그런데 그 뒤로 너의 사진을 꺼내 본 적 없어.

꺼내 보지 말아야지가 아닌

볼 수가 없고 볼 생각도 하지 못했어.

따듯한 물엔 몸을 담글 수 있지만

끓고 있는 물엔 다가가지도 못해.


그래도

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니

슬프지 않기 위해 덧대어 둔

누더기들이 낡아졌나 봐.

조금씩 그것들을 마주하고 있어.

슬픔 뒤에 켜켜이 쌓여있던

빛바랜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봐.

네가 남기고 간 것들.

소중하고 반짝이고 따듯한 것들.

이제 넌 끓는 물이 아닌,

언제든 꺼내어 마음을 덥힐 수 있는 손난로가 되었어.


고마워. 나와 잠시 여기 함께해줘서.

식지 않는 따듯함을 남겨주어 고마워.



-

네가 두고 간 온기

슬픔 뒤엔


좋은 꿈 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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