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강명
같잖은 영웅심리에 대하여
응답메시지가 왔다. '같잖은 영웅심리 빨리 벗어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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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서 내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난 내가 뭐라도 된 것 마냥 학과 친구들과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학과 소모임 홍보 시즌에도 후배들에게 자기 소모임에 들라고 추천하는 녀석들과 달리 나는 학과 소모임 같은 거 들 필요없으니 차라리 학과 밖에서 대외활동을 하라고 말했고, 여학우들 눈치를 보느라 담배를 숨어 피던 남학우들이 꼴보기 싫어 더 대놓고 담배를 폈고, 동기들보단 고학번 선배들이랑 더 자주 어울렸고 후배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고, 우리 과 행사는 재미없다며 그런 날이면 옆 전문대학 친구들을 만나 어울렸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것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멍청한 허세꾼이었다.
같잖은 영웅심리란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학교를 휴학하고 공연기획팀을 들어간 것도, 영화동아리나 복수전공을 한 것도, 학교를 자퇴하고 경찰이 된 것도 결국 다 나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던 점도 있는 것 같다. 일을 시작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승진이나 표창 이런 것들에 매달리는 동기나 선배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것들 필요없고 내게 주어진 일이니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회사 안에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없고 자아실현은 회사 밖에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 그리 남들과 다르게 튈려고 했는지, 너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며 답답해하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게 왜 그렇게 보였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어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치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리고 유치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나는 그랬던 내가 싫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깨닫고 고치려고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조금 아쉽다. 뭔가 이제 사회화가 되어버린 재미없는, 나를 치기어리다고 치부했을 그 사람들과 내가 같아져 버린 기분이 든다. 그때의 내 개성은 이제 없어져 간다. 같잖은 영웅심리였을 지라도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충분히 재미있었고 충분히 가치 있었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몰랐을 것을 알아서 좋았고 그 다른 삶이 부럽지도 않다.
지금은 재미없는 사람이 되버려서 내가 계속 치기어리게 살다간 잃을 것이 많겠구나 싶어졌지만, 그 때는 그런 걱정이 전혀 없었다. 나 잘난 맛에 재수없었던, 같잖은 영웅심리가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다시, '표백'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