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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임 Mar 19. 2021

<읽는 순서> 일상(1)

편집자

“편집자스러워요.”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불편했었다. 

칭찬도 험담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듣는 새내기 편집자는 그랬다. 

겉모습은 그렇지만 다른 면도 있다고 반박할 마음도 있었다. 

이제는 반론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을 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반박하며 내세울 만한 편집자스럽지 않은 면도 점점 없어져 간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던가. 

철학자의 말은 ‘무지를 자각하라’는 격언인 걸 알지만, 

종종 단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들린다. 

어쨌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쉬운 과정이 아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거의 모든 분들이 호의를 보인다. 

책을 만드는 직업을 궁금해한다. 

좋아하는 책을 말해주시거나 책을 내보고 싶은 꿈을 가져본 기억을 떠올리며 굉장히 환대해 주신다. 

책은 좋은 것,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회 통념 덕일 거다. 

대화가 이어져서 쉬는 날 무얼 하느냐는 질문에도 ‘책을 읽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는 금세 바뀐다. 

나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정말 재미없죠.’ 하며 먼저 너스레를 떠는 중년 편집자가 되었다. 

책 만드는 일은 나의 일이자 일상이다. 


직업만으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있었을 것이다. 

직업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개개인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느낀다면 본질에 가깝다고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점점 더 나는 편집자스러워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만든다. 



<읽는 순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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