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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otrekker Jul 17. 2017

습관과 추억

구멍난 command 키


1.


오래 전 control 키가 잘 눌리지 않는 키보드를 사용했습니다. 어지간해선 눌리지 않아 엄지손가락으로 무척이나 꾹 눌렀죠. 그렇지 않아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편인데, 입력이 잘 안 되는 control 키는 오죽했을까요. 그렇게 control 키가 잘 눌리지 않는 키보드를 몇 년 사용하다가 다른 키보드로 교체했는데도, 이미 습관이 돼버린 엄지손가락의 압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용한 키보드의 command 키에 구멍이 났습니다. 어느 날 홈이 파인 걸 보고 정말 인정사정 없이 누르나 보다 했는데, 결국 구멍까지 뚫은 겁니다. 애플 키보드는 키의 높이도 낮고 살짝만 눌러도 입력되는 편이라 command 키를 그렇게까지 누를 필요는 없는데 말입니다. command 키를 누를 때 닿는 엄지손가락의 손톱이 열일 했을 겁니다.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는 오른손으로 하고, 채색은 왼손으로 합니다. 양말과 신발은 항상 오른쪽부터 신고, 가방끈에 오른팔을 먼저 넣습니다. 커피잔은 왼손으로 들고 마시죠. 그러면 안 된다는데 카메라 뷰파인더를 왼쪽 눈으로 봅니다. 누군가 한 말의 일부 어절을 되뇌면서 음절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거립니다. 집중하여 들을 때는 손바닥으로 턱선을 문지릅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는데, 또 있을 겁니다.


2.


삶의 동력을 미래의 전망에서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추억에 바탕을 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행복하고 즐거웠던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오늘을 삽니다. 것은 미래 지향과는 인연이 없고 과거를 집착하는 모양새이기까지 합니다. 특히 힘들거나 지칠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은 오롯이 지난날의 기억입니다.


오늘을 비교하는 기준이 괜찮았던 과거의 시간이다 보니, 오늘은 항상 과거보다 힘듭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을 사는 힘을 과거에서 얻지만, 오늘은 항상 힘든 겁니다. 그렇게 보낸 하루는 과거가 되고, 기억은 조작되고 미화되어 또 다시 어느 날을 보낼 과거의 시간이 되는 겁니다. 참, 하루하루가 징글징글하지요.


오늘을 사는 동력을 과거에서 끌어오려는 노력은 습관입니다. 습관과 추억은 그 원점이 과거에 있다는 게 닮았습니다. 오늘을 오늘답게 살 수 있는데도 자꾸 과거에 얽매여 삶을 죄는 건, 이제는 command 키에 문제가 없는데도 힘주어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구멍난 command 키야 어쩔수 없을 테고 새 것으로 바꾸면 된다지만, 삶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망가져버린 command 키, 삶 어느 한 켠에 구멍이 났는지 이제는 조금 지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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