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물 때 따라 수면 위를 들고 나며 낙지잡이를 했다. '주낙'은 연승어업으로 외줄낚시에 속한다. 긴 외줄에 2, 3백 개의 주낙 알을 매달고 낙지가 좋아하는 미끼인 참게를 고무줄로 고정시켜서 일정한 수역에 길게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잡는 어법이다. 예전에는 손주낙이라고 해서 어부가 직접 외줄을 끌어가는 반복 작업으로 고단함이 컸지만 지금은 이를 대신하는 장비가 보급되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물질을 할 수 있게 됐다.
홰낙지잡이처럼 주낙 역시 물때에 맞추는 민감한 어업이었다. 배를 타고 나가야 하니 몸만 움직이면 되는 횃불 낙지잡이보다 더 신경 써야 했다. 바다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서 간식이나 라면을 챙겨야 했다. 밤에는 뭍보다 바다가 훨씬 추운 법이라 초가을에도 방한용품을 꼭 준비했다. 자칫 썰물에 배가 갯벌 위에 얹혀버리면 그 날 하루는 공쳐야 하니 미끼 작업을 서둘러 마쳐야 했다. 긴 외줄에 미끼를 달아 독특한 형태를 그리며 감아가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단순 반복 작업이지만 혼자 하면 꼬박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걸렸다. 줄끼리 서로 엉키는 일이 많아서 짜증 내는 날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여 1 년 만에 손에 익혔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은 청년을 '조금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준비할 게 많아서 바삐 움직이는 부모님을 보면 눈치껏 미끼 끼우는 일을 돕곤 하였는데 그 날따라 신기하게도 낙지가 많이 잡혔다고 좋아하셨다. 하루, 이틀 상간에 일이 아니라서 신기했다고. 아들은 긴가민가했다. '바람의 아들'이 '이종범'인 건 익히 들어 알지만 '조금의 아들'이라니. 누가 끼우나 상관없을 텐데. 고마움을 대신하려고 돌려 말씀하시는 건 아닐까?
어머니는 가끔 점집을 찾았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었지만 해마다 한 번쯤 새 해 운세를 점칠 욕심에 우리 형제를 떼어놓고 어디론가 다녀오시곤 하였다. 사람에게 '미래'는 늘 불안과 설렘을 동반하는 예정된 시간이니까.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라고 타박하면서도 어머니를 떠올리며 좋은 덕담을 많이 듣고 오기를 기대했다. 할머니는 청년이 태어난 날을 물때로 세면 조금 날이라는 말과 함께 바다와 잘 어울리니 섬이나 해안에서 살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단군 신화를 떠올리다 피식 웃고 말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잊고 말았지만 어른의 말씀 가운데 대부분이 청년의 과거와 현재를 닮았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고집 센 성격에 고 뚜렷한 주관으로 섬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2017.11.28. 압해도. 주낙 알의 고무줄에 낀 참게. 반복하는 작업이 지루하지만 뿌듯함이 크다.
이러나저러나 조업에 나서는 부모님이 바람에 낀 추위나 거센 조류의 물살에 휩쓸리는 통증을 이겨내자면 고단한 심신을 이겨낼 힘도 필요하고 풍어나 안전을 기원할 신(神)도 모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선인(先人)들은 바닷길에 오르기 전에 용왕신께 고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지 않던가.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배를 새로 지으면 막걸리를 어선 안팎에 붓거나 정성 들여 준비한 돼지머리와 과일로 상을 차려서 해신(海神)께 절을 올리는 풍습을 잇고 있다.
조금의 아들을 되새기며 앞으로라도 미끼 작업을 도맡아서 일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반복하는 작업이 쉽지 않지만 추위와 바람에 맞서 싸우는 두 어른의 수고로움에 비하겠누. 굴 따러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섬집 아이처럼 날씨가 안 좋은 밤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포구로 향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면 걱정이 커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 평온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사리물의 아들, 아니 한 물의 아들이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