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지혜
주말 동안 하타요가 TTC(Teacher Training Course)를 들었다. 철학 시간에 선생님께서
WANT
LIKE
ESSENTIAL
원하고, 좋아하고, 필요한 것을 아사나에서도 인생에서도 지혜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의 교집합이 아주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교집합은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원한다고 믿는 것, 욕망하는 것은 대부분 타인 혹은 외부 세계로부터 원하게 되는 것이라 좋아하는 것과 동 떨어진 세계일 수도 있다고.
나의 경우 10대와 20대 초반 내내 예술에 대한 열망, 욕망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예술을 하는 나, 에 대한 어떤 상(像)이 늘 존재했다. 그것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동안 성취도 있었고 때로는 재미도 있었지만 어쩐지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로부터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욕망은 정말 내부로부터 베어 나와 표현의 영역으로 옮겨온 것이기보다는 누군가가 되고 어떤 것을 하는 겉모습을 모방하는 것에 더 커다란 에너지를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꾸만 몸이 아팠고 다쳤고 잘 못 먹고 잘 못 자고 잘 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 속했던 집단과 규율과 규범과 관념은 나를 훈련시켰고 정제시켰고 어떠한 틀 속에서 기술을 터득하게 도와주었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자 내면의 소리보다 외면의 완성도, 세상이 정해둔 높은 가치에 눈을 돌리게 했다. 더 완벽하고 더 뛰어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몰두할수록 점점 고갈되어간다고 느꼈다.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가 누적되어 갔다.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한 편을 완성하고 제주로 떠난 해 겨울, 하타 요가를 만났다.
식사 자리와 찻 자리,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선생님께 어떻게 하면 후굴을 잘할 수 있는지, 명상 상태에 이르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또는 선생님은 어떻게 평생 매일 같은 시간에 수업을 하실 수 있는지, 다양한 질문을 했다. 질문들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내게 선생님께서
"소연, 소연은 무엇이 궁금하니?"
다정하게 물으셨다.
"음... 저는 왜 이렇게 영감이 부족할까요?
어떻게 하면 영감이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제주에 가서 선생님께 처음 여쭤본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면서
"영감은 살다 보면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야. 영감 별 거 없지~" 하셨다.
그 뒤로 부산에 돌아와 바깥에서 무언가를 채우려던 시도를 내려두었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분별해서 살펴보기로 했다. 원한다고 믿었지만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었고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할까 봐 시작하지 못하던 것들을 시작했다.
수 십 수 백 수 천권의 책을 보고 공연을 보고 누군가의 작품을 볼 때는 내 속에 있는 것들은 보잘것없고 부족하게만 여겨지더니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출하는 삶을 위한 리듬을 찾아가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속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인생이 조금 더 편안해진다.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아사나 수련에서 기울기 후굴 전굴 비틀기 도립 휴식을 골고루 해주어야 몸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타고난 경향에 따라 내게 필요한 것들을 해야 인생도 건강해진다.
원하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 애쓰던 인생의 페이지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지혜롭게 배워나가는 인생의 페이지로 옮겨왔다.
힘을 빼고 숨을 쉬며 자연스럽게
이 생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좋아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발견하고 매일의 삶에서 이리저리 기울어지며 그 균형을 맞추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