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본질이라는 것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체감하는 분명한 실체를 지닌 것이라고.
세상의 무수한 유혹의 물결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살아남은 기록자.
우정이란 관념일 뿐이지만 묵이나 수박이나 인절미 같은 것은 눈에 보이는 실재가 아닌가.
우리의 할 일은 사랑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의 할 일을 할 뿐.
읽는 머리와 쓰는 머리는 다르다지만 나는 아직도 좋은 소설은 읽는 사람들을 자꾸 쓰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믿는다.
두 요가원 출근과 출근 사이 2021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7편의 소설과 마지막에 수록된 심사평과 평론까지 모조리 다 읽어버렸다.
위의 문장들은 박민정 소설가의 평론들.
꾹꾹 남겨둔다.
삶에서 체감하는 분명한 실체가 있는 것들, 거친 물질들은 정직하다. 활자와 이미지 사이를 유영하며 관념 속을 떠다니는 일은 매혹적이다. 미묘하게 붕 떠 있는 것들에 흠뻑 빠져 시간을 통과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누르고 요즘은 규칙적인 일상의 틀에서 먹고사는 실체와 가까운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그냥 산다.
눈 떠서 씻고 출근 준비하고 출근하고 퇴근한다. 프리랜서라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출근하고 퇴근한다. 장을 봐와서 밥을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하고 탈탈 털어 널어두고 다 마르면 차곡차곡 개어둔다.
얼마 전 받은 "언니는 2021년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라는 질문에 "음- 나는 생활의 안정인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이런 질문에 곧바로 생활의 안정 따위나 이야기하는 재미없는 언니가 되기 싫었는데 생활이 안정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다. 지금은 내 몸 하나 잘 먹이고 씻기고 온전한 공간에 눕히고 재우고 깨우고 하는 것들을 허투루 하지 않겠다는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문장이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도 좋고 부어라 마셔라 긴 밤을 붙잡고 모든 것을 쏟아내던 때를 지나왔다. 이제는 잘 먹고 잘 자고 규칙적이고 따뜻한 울타리 속에서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보살피겠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겼다.
체감하는 분명한 실체가 있는 것들, 그것들에 중요도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삶은 지워도 지워도 지워도 다시 생기는 화장실 물때 같기도 하고 빨아도 빨아도 돌아서면 다시 생기는 빨래 더미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오늘은 무얼 먹지 소소한 설렘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고 나의 경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으로 출근해 허락된 시간만큼 몸과 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물론 그 사이에 가끔은 마음과 사랑에 대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도 잊지 않고 슬쩍 시도해본다.
매일매일 다르면서도 같은 세계, 사랑과 진실과 평화를 말하지만 그 틈에 축축하고 거칠고 지난하고 돌아서면 자꾸 눈에 밟히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다. 보살핌이란 그런 것인 듯하다.
이 축축하고 지난하고 거칠고 불편한 것들 속에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전부라고. 관념일 뿐인 것들을 실재로 바꾸는 힘이 일상 곳곳에 숨어있다. 그래서 요즘 자꾸 그렇게 밥 이야기를 한다. 밥 먹었냐고, 밥 먹자고. 잘 먹고 다니라고, 점심 맛있게 드시라고. 저녁은 드셨냐고.
동시에 여전히 세상의 무수한 유혹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시간들도 통과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에 쉽게 현혹되고 새 것을 좋아하며 오래된 것들을 동경하곤 한다.
스스로 기꺼이 선택해 온몸으로 통과해 온 시간들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 살아가는 시간들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하고 재미없는 일상의 거친 실체가 스스로를 생생하게 살리는 것을 목격한다.
우리의 할 일은 다름 아닌 사랑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일을 할 뿐,
실체가 없는 것을 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체가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인간으로서 역할이자 겸손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것은 축축하고 지난한 실체로 가득한 일상을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 그냥 사는 것.
그리고 축복은 살아보겠다는 모든 시도에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목격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