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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Oct 08. 2021

어디로 가고 있지?

풍요,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다복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재정비 중



  올라타서 쓰담 쓰담하기 좋게 생긴 다복이,


  우리는 금전적 물질적 풍요가 인기인 시대에 산다.

나 역시도 그 속에 사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욕망 덩어리라 다복이 등에 두 어번 올라타 '어서 학자금 대출 훌훌 털고 쾌적한 집과 나만의 요가원을 가지고 싶어요",라고 빌었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며 분주한 삶을 살기를, 더 높게 더 멀리 더 많이를 가르치는 교육제도에서 노선을 이탈하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참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다녔다. 대학원도 다니고 싶어졌다. 공부란 하면 할수록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진실을 일깨워주었지만 그 감각을 잃지 않고 계속 살고 싶었다.


  언어, 교육, 예술, 요가의 울타리 속에 스스로를 뿌리내리기에 유리한 선택을 하며 그동안 성장해왔다.


  자연으로부터 수많은 것들을 빌려와 풍요 속에 사는데 삶이 더 분주해지는 구조적 모순을 용감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다양한 언어로 쓰인 아름다운 문학을 탐구했다. 교육제도의 모순 속에서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나 고민했다. 학교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창조하는 시간들은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요가를 만나고 몸과 숨과 삶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나 여전히 되찾은 내부 세계의 평온은 금세 욕망을 자극하는 외부세계로 주의를 빼앗겨버린다. 내부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깨어있으려 할수록 괴롭다. 문제의식을 접어두면 유희 거리가 지천인 세상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 다복이 등은 반질반질해지다 못해 수술이 필요해졌다. 나 역시도 다복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다.


  학교 바깥에서, 매트 바깥에서는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제는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기사님이 그러셨다. 세상은 자꾸 더 좋아지는데 사는 건 왜 이렇게 피곤하고 자꾸 더 팍팍하죠.


다복이가 돌아오면,

내가 다복이 등에 타지 않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다복이 등에 타서 또 사진을 찍고 무언갈 빌게 될 것 같다.


내부 세계의 풍요를 담보 삼아 외부세계의 물질적 풍요의 환영을 창조해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내 평생 지금의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생존은 그런 식으로 해왔다. 스스로의 욕망과 싸우고 또 타협하며 외부세계의 환영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내부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나는 지금 그려가던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자주 평화가 깨어지곤 한다.


그 진실을 알면서도 쉽게 멈출 수 없는 스스로가 징그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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