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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Oct 10. 2022

안녕 불면 안녕 서른

오늘도 결국 4시를 넘겨 밤보다는 아침이 가까워져 와서야 잠이 들겠다.


난 아주 아주 아주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다.

스트레스 관리 능력도 부족한 편인 데다가 민감도도 높아서 거의 탄광의 카나리아, 바다의 개복치 수준이었는데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치가 쌓이면서 스트레스 관리력 아마도 회복 탄력성이 좋아지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이런저런 반응을 하는데 신체의 반응에 대한 해석 능력 혹은 대응 능력이 좀 생기는 것이다. 가령 스트레스받으면 목이 뻐근한데 이게 갑상선 호르몬 때문인지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서 그런 건지 여러 가지 분석을 해보는 것이다. 어제 내가 잠은 어떻게 잤더라? 얼마나 잤더라? 오늘 어떤 자세로 앉아 있었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더라? 그래서 내 감정이 어땠지? 난 어떻게 반응했었지? 오늘 수업은 몇 타임 했더라? 오늘 데모는 얼마나 보여줬지? 오늘 식사는 어떻게 했지? 간식은? 오늘 물은 얼마나 마셨어? 이런 걸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다.


불면증은 내 오랜 친구였다. 나는 아주 꼬맹이 때부터 밤잠이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성장기에 키가 안 컸다. 그렇다고 내가 잠이 없는 사람이냐 하면 아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자 주어야 한다. 난 수면욕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뒹굴 거리는 게 가장 완벽한 휴일이 되는 사람이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쉬이 잠들지 못한다. 가장 예민한 건 청각 특히 TV, 컴퓨터 소리를 듣고는 못 잔다. 전자파 고주파 같은 특유의 소리가 너무 거슬린다. 차라리 사람들이 옆에서 고함을 치고 떠들어도 술자리에서도 잠에 들기만 하면 새근새근 코까지 골면서 잘 잘만큼 볼륨 자체에 그렇게 민감한 인간은 아닌데 전자제품이 내는 그런 소리가 정말 듣기 괴롭다.


그리고 불빛 휴대폰 불빛, 에어컨에 온도를 표시하는 불빛에도 거슬려서 잠들지 못한다. 근데 또 신기하게 대낮에 햇살 받으면서 낮잠은 잘 자는 편이다.


머리가 쉬지 못하는 상황일 때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학생 때는 벼락치기하기 유리해서 이게 아주 유용한 건 줄 알았다. 며칠씩 잠 안자도 거뜬했고 몰아자도 괜찮았다. 대학 때 연극할 때도 그랬다. 짧으면 하루 이틀 길면 5일까지도 밤을 꼴딱 새우고 낮에 잠시 1-2시간 눈 붙여도 괜찮았다.(괜찮은 줄 알았다. 수면 패턴 와장창)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못 잔다. 이건 반드시 못 잔다. 낮에 있었던 일들 마음이 불편한 원인에 대해서 모조리 복기해보다 보면 해가 뜨기 일쑤다.


오늘같이 풀문 뉴문, 생리 직전일 때도 쉽게 잠에 못 든다. PMS로도 불면증이 있는 편


그 덕에?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방법들을 많이 터득했다. 유용한 도구들이 있다. 요가, 아로마, 책 읽기, 반신욕, 따뜻한 음료 마시기, 호흡 명상, 기도


이도 저도 다 안 되는 날은 잠 자기를 포기하고 그냥 글을 써보는 거다. 아무도 안 궁금해할 내 머릿속 이야기들을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잠이 잘 안 오니까 그냥 뱉어내 본다.


2016년인가 그 이전일까 아무튼 대학생 때 불면과 공황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2017년 1-2월의 겨울 일 수도 있겠다. 그때의 나에 비해서 지금의 나는 정말 많이 건강해졌다. 공황과 불면 진단과 함께 기분조절장애 2형 즉 조울증 특히나 우울이 심각하다고 했는데 계절을 타긴 하지만 감당이 가능한 정도로 파도의 폭이 줄었다. 파고를 알게 되었다. 대충 이때쯤 되면 잘 못 자고 감정이 얼마만큼 오르면 얼마만큼 꺼지고 그 데이터가 쌓이니까 대응이 가능하다.


숨이 잘 안 쉬어질까 잠에 못 들까 괴로웠던 숱한 밤들   정작 그 일들은 다 사라져 버려서 기억도 나지 않는데 잠이 안 오는 게 습관이 되어버리고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그게 두려워서 또 잠이 안 오고 또 숨이 안 쉬어지고.


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찾아간 병원에서는 정말로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없냐고 여러 번 되물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으려나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도 자살 충동의 범주인가요? 물었더니 그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뇌파 검사나 질문지에 의한 내 우울 점수는 당장 약물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수치라고 했다.


아, 그런가.


싶었다. 내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나, 의사들은 갸웃갸웃했다. 가끔 좀 많이 우울하긴 했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는데 그렇다니 그런가 곱씹어봤다. 그리고 약이 효과도 없길래 병원을 옮겼다. 정말 다행이었지. 난 우울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난 조울증 제2형이라는 이름의 경도의 기분조절장애라고 했다. 조증 상태 일 때는 본인도 주변인들도 인지를 못하고 오히려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고 평가되는 상태라고 했다. 일 벌이기 시기. 상대적으로 우울이 그래서 깊어진다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고갈상태에서 책임져야 하는 일들은 많은데 에너지는 전혀 나지 않고 이 우울은 불가항력적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랬다. 그랬었지.


아마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정도 나는 마음의 감기가 심하게 왔다 갔던 것 같다.


감기는 한번 걸렸다가 나아도 또 걸릴 수도 있다. 살면서 감기 한번 안 걸리는 건강 체질의 사람도 많고 철이 바뀔 때마다 꼭 감기를 앓는 사람도 많다.


마음이 아프기 전에 몸은 항상 먼저 신호를 보내주었었다.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배에 가스가 찬다거나 이유 없이 관절 마디가 찌르는 듯이 아프다거나 이명이 들린다거나 어지럽다거나 그런 작고 큰 신호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다


어느 날 잠 못 드는 날이 부쩍 많아진다거나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다 쓰러졌다 눈물이 이유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왔다 잠을 계속 자고 또 자고 또 자도 잠이 왔다


어떤 날은 세상 모든 일에 의욕을 보이다 또 어떤 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그렇게 우물을 팠다 파고 파고 또 파고 우물 속에 반사된 모습을 자주 들여다보며 우물 끝에 저 심연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끝도 없이 내려가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 가라앉아진 것 같았다.


아주 큰 부력으로 마치 부우우웅 떠오르듯 우물 밖으로 나와졌다. 그렇게 다시 세상을 마주했을 때 나는 내 우물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고 잠 못 드는 기나긴 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숨을 잘 쉬게 되었고 많은 일을 벌이지도 무력감에 시달리지도 않게 되었다.


때때로 왼쪽 무릎과 발목이 시큰하고 때로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1-2달에 하루 이틀 정도로 빈도가 줄었다. 대부분의 날은 7-8시간씩 개운하게 잘 잔다.


때때로 심장박동이 다르게 느껴질 때면 이젠 금방 알아차린다. 한 두 숨 만에 숨이 잘 쉬어진다. 미간 사이에 내가 과도하게 긴장을 하고 있구나 금방 알아차린다.


고통은 대개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 생각에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 때 생각 자체는 죄가 없다. 그걸 바라보는 힘을 훈련하고 그 꼬리가 안 끊어질 것 같은 날은 기도를 한다. 그럼 마법처럼 고요해진다.


믿어지는 어떤 순간이 있다. 일순간의 고요와 평화가 찾아오는 그 정적. 그 순간에 빛이 있다.


안녕 불면 안녕 우울

안녕 생각 안녕 고통

안녕 소란 안녕 고요


모든 소란이 잦아들고 고요와 적막이 찾아온 순간


한 때는 그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서

인위적으로 생활을 통제하기도 했었다.

그건 분명 어느 정도까지는 나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인위적인 노력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순간에 집착하지도 않게 되었다. 무얼 먹든 무얼 마시든 무얼 듣고 무얼 보고 무얼 생각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힘 혹은 관찰하고 수용하는 힘 혹은 잘라내는 힘 그런 힘이 미약하게나마 생긴 것 같다.


서른을 앞두고 요즘 멍하니 있을 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서른이면  이립이라는데 이제 두세 달 안에 나는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7-8개월 뱃속의 아가를 대하듯 태교를 좀 해보자.


오늘은 클레멘티 소나티네를 듣고 몰리노 독서모임을 하고 점심 저녁도 꼭꼭 씹어 잘 챙겨 먹고 사이사이 차도 충분히 마시고 충분히 누워있고 해야 하는 공부도 적당히 했다.


훌륭한 태교네.


1994년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세포가 만나 내가 이 세상에 나왔다면 그 후로 30년이 지나 지구에서 자라나 수많은 세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났을 텐데 타고난 기질은 바꾸지 못해도 그때의 생명체와 새로 태어날 나는 완전히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닐까


나는 아직 나를 더 키워주고 싶고 돌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었다. 결혼과 출산을 척척 해내는 친구들 언니 오빠들을 보며 누군가와 함께 사는 미래는 그려져도 아직은 나는 나를 좀 더 돌보고 싶다고.


근데 그때도 스스로 돌보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많은 보살핌들 속에 있었고 이제야 알을 깨고 나오는 힘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내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서른 이립 而立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

이제야 학문의 기초가 생기는 때


이제야 시작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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