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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시야간숙소 Aug 14. 2021

‘요점정리’ 인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다.

넓고 얕음을 긍정하지 않기

5년 전에 쓴 짧은 글,

유튜브에 각종 요약/정리 영상들이 범람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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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중을 상대로 인문학을 쉽게 해설해 주는 강의나 서적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다가가기 어렵고 힘든 인문학을 누군가가 쉽게 설명해 주기를 바라며 그것에 기대는 것이다. 표면상으로 보면 쉽고 빠르게 필요한 내용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유익하게 보인다. 하지만 소위 ‘요점정리’식 인문학 강의와 서적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인문학의 본질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축소와 비정규직의 증가는 대학의 교육과정을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게 재편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의 재편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한국 대학은 실용학문에 비해 취업률이 뒤처지는 인문학을 축소시켰다. 그러나 사회는 실용학문만으로 지탱될 수 없다. 실용적 기술을 사회에 어떤 식으로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했을 때 각종 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나 구의역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성찰로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문학은 그 자체만으로는 취직에 도움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문학에 많은 시간을 들일 형편이 되지 못한다. 요점정리식 인문학 강의와 서적들은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은 한 인문서의 제목처럼 ‘넓고 얕을’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사회는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고민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인간의 긴 삶과 철학적 고민 등을 탐구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본질이다. 따라서 단 하나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꾸준히 지속적으로 쌓아가면서 정리해야 한다.

태생적으로 ‘넓고 얕을’ 수밖에 없는 요점정리식 인문학 강의는 이와 같은 인문학의 본질과 배치된다. 스스로 해야 할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을 강사와 저자의 요점정리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본질을 외면하고 이제는 기업에서도 인문학적 지식을 요구하니깐 딱 그 정도 수준에 맞춘 인문학 공부는 ‘취직’에는 도움이 될지라도 인문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세월호 사고나 구의역 사고와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인문학의 ‘얕음’을 긍정하고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을 배제하는 요점정리식 인문학 강의와 저작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탐구하는 자세가 진정한 인문학 공부이다. 이러한 자세로 인문학에 접근할 때만이 사회의 각종 폐해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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