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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an 11. 2024

무거운 현실에서 찬란한 꿈을 꾸던 사람들

-  뮤지컬 [일 테노레]

무대를 가리고 있던 붉은 커튼이 올라가면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는 거실이 보인다. 남자의 이름은 윤이선. 그는 성공한 음악가다. 그의 이름을 딴 음악당이 만들어질 정도니까.


노년의 이선은 자신의 이름을 딴 음악당 개관식 연설 준비를 하고 있다.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듯 외교관 출신의 아내 진연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이런 성공을 거둔 것일까. 그의 연설을 타고 이야기는 1930년 경성의 거리로 돌아간다.




인력거가 지나가고 학생복을 입은 사람들과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스치는 거리 한편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세브란스 의대 학생복을 입은 젊은 시절의 남자, 윤이선이 보인다. 이선은 죽은 형을 대신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언제나 형을 그리워하고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점검한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삶이란 피곤하고 고단한 법이다.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가방을 팔 사이에 낀 채 소심하게 길을 걷던 이선은 항일 운동 조직인 ‘문학회’의 전단지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그들이 모인 곳으로 향한다.


다음 날 문학회의 리더인 서진연을 만나기 위해 이화학당 앞에 서 있던 이선은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이끌려 여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학당 안으로 들어간다. 미국인 선교사 베커 여사는 이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성악을 배우라 권한다. 이선은 형을 대신해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베커 여사의 강의실에 와 있다.


나에겐 충분해 열정. 마음속 가득한 감정
나조차 몰라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아
지금 난 살아 있어 내 삶의 이유를 난 찾아냈어


지금이라면 응원하고 축하할 젊은이의 자아 찾기 과정처럼 보이지만 당시는 일제 치하의 조선이다. 학생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총독부의 감시 대상이 되고 공개적인 의사표현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기였다. 개인이라는 존재는 민족이나 조선의 독립이라는 꿈 앞에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시대였다. 이선의 자아 발견은 녹록지 않은 시대 상황과 부딪히며 삐걱거린다.




내가 이 뮤지컬을 보러 간 유일한 이유는 홍광호 배우다. ‘일테노레’라는 제목이 뭔 뜻인지도 모르고 극장을 찾았다. ‘일테노레’라는 말이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하는 ‘IL TENORE’라는 것을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들으며 깨달았다. 주인공 윤이선의 모델이 조선 최초의 테너 ‘이인선’이라는 것도 뮤지컬이 끝난 후에 알았다. 하지만 세브란스 출신의 의사이자 테너였던 이인선이라는 인물 형태만 가져왔을 뿐 뮤지컬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완전한 창작물이다. 지금까지 제작된 일제 치하 조선을 다룬 뮤지컬 중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노래가 주가 되는 장르이다 보니 뮤지컬의 플롯은 헐거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름다운 노래가 넘실거리는 중에도 착실히 구성과 반전을 쌓아간다. 이선이 처음 음악에 입문하고 조선 최초로 오페라를 제작하게 되는 1부의 과정은 빠른 이야기의 전개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우여곡절 속에 첫 오페라 무대가 시작되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이선의 이름을 딴 오페라 극장이 만들어지는 2부에는 1부부터 차곡차곡 준비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2부의 마지막쯤에는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탄탄한 스토리도 고맙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음악이다. 박천휴, 윌 애런슨(Will Aronson) 콤비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다. 연극을 준비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문학부원들의 희망찬 노래나 골드레코드사 오디션 무대 장면들은 화려하고 흥과 신이 절로 난다. 하지만 한 곡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선의 아리아다. 내가 따라 부를 수도 없는 성악곡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흥얼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름답고 슬픈 노래다.


가네 멀어지네 빛바랜 희망이 되네
나의 오, 나의 찬란하던 꿈이여 내겐 전부였네.
무겁게 짓누른데도 홀로 기꺼이 온전히 짊어졌던 꿈의 무게
당연한 길의 끝에 나 도착하네
이 눈물의 길에 따라 걸어온 세월에
이제 나의 지친 몸을 쉬게 허락해 주오 허락해 주오
내 마지막 이 노래

홍광호 배우는 성악곡까지 이렇게 잘해버리면 어쩌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의 노래가 순식간에 잊힐 정도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어쩐지 관객 입장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워낙 아무것도 모르고 극장을 찾은 탓에 음악 감독에 대한 문제는 인터미션쯤 알아버렸다. 성추행 때문에 퇴출된 이력이 있는 음악 감독의 복귀작이라……. 덕분에 무대 마지막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보내야 할 뜨거운 박수가 미지근하게 되어 버렸다. 관계자가 아니라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꼭 필요한 선택이었을까 하는 마음은 든다. 뮤지컬 티켓 값도 장난이 아닌데, 꼭 이래야 했을까. 재관람 의지는 충분히 있지만 아마 음악 감독이 교체됐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는 참아야 할 듯하다.


잡음도 분명히 있는 공연이지만 스토리와 노래라는 측면에서는 흠잡을 것이 없다. 이번에는 어렵겠지만 재연 무대가 있다면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무대다. 홍광호 배우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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