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체코에서 혹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확실히 기억에 남은 건 기네스 맥주 정도다.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파는 맥주만 알던 사람에게는 색부터 놀라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극단적인 경우였을 뿐 빚어지는 공간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어떤 다양한 맛의 맥주가 구현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맥주를 배우기 전까지는. 이래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물론 아직도 알아야 할 게 그득그득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독일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에 툼브로이를 찾았다. 목, 금, 토, 일 4일만 문을 연다. 확인을 잘해야 한다. 독일에서 맥주를 마셨을 때 그 지방의 맛을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땐 몰랐던 것을 어찌하리.
입구에 '독일맥주공장'이라고 써 놓았다.
툼브로이는 독일인 양조사 안드레아스 씨가 운영하는 양조장이다. 독일 툼브로이 소유주 가문의 6대 후손이라고 하니 부모님 손맛은 물려받았을 거란 확신 비슷한 것이 들었다. 게다가 한국 이름은 안덕사 씨. 같은 성씨인 줄은 몰랐는데….. ㅋㅋ 묘한 친근감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툽부로이의 2층 홀
툼브로이는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는 작은 제조업 공장들뿐. 흔한 편의점 하나 찾을 수 없는 곳에 느닷없이 맥주집이 있다. 1층에는 테이크 아웃 판매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바깥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맥주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홀이 나온다.
이층에 자리를 잡으면 양조장이 보인다. 내가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도 헤드폰을 쓴 안드레아스 씨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조장을 20여 곳 넘게 다녔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오픈한 곳은 처음이었다.
2층에서 양조장이 내려다 보인다. 이건 감동이다!
양조장의 기본은 ‘물’이다. 술에 첨가하는 양도 만만치 않지만 끓이고, 거르고, 버리고 하는 모든 것에 물이 포함되어 있다. 엄청나게 관리하지 않으면 물 때나 곰팡이의 습격을 피하기 어렵다. 꼼꼼하게 닦고 말리고 관리하고 화학약품의 힘까지 빌어도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 가게에서는 양조장을 오픈하지 않는다. 불을 꺼 놨거나 커튼 같은 것으로 가려놓는다.
하지만 툼브로이에서는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양조장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유리로 창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이 먼 곳까지 찾아온 보람이 차오른다.
샘플러 2개를 주문하니 툼브로이의 모든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메뉴는 비교적 간단하다. 클래식 맥주 3종류와 시즌 맥주가 3종류. 샘플러를 시키면 모든 맥주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클래식 맥주 리스트에는 헬레스와 바이스, 로겐이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방식으로 만든 페일 라거’로 헬레스를 소개하는 것을 보니 안드레아스 씨는 바이에른주 출신인가 보다. 바이에른이라면 ‘맥주순수령’으로 유명한 곳이다.
슈니첼과 호밀빵
1516년 독일 바이에른 공작인 빌헬름 4세는 ‘물과 맥아, 홉’만 사용하라는 ‘맥주순수령’이란 법을 발표한다. 물과 맥아, 홉만 사용하는 ‘법’까지 만들었다는 것은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맥주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반증이다. 물론 당시의 독일을 지금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독일은 귀족들이 소유한 많은 국가들의 연합체였다. 당연히 바이에른을 제외한 독일의 다른 곳에서는 밀이나 그 밖의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맥주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바이에른에서 밀맥주가 사라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빌헬름 4세의 뒤를 이은 빌헬름 5세는 직접 양조장을 짓고 밀맥주를 생산했다. 이름하여 ‘호프브로이’ 양조장. 그는 이 양조장에서 생산한 밀맥주를 즐겼을 뿐 아니라 판매를 통해 엄청난 돈을 끌어 모았다. 호프브로이 양조장이 그에게 ‘재력’을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호프브로이 양조장의 능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재력뿐 아니라 ‘명성’도 선물한다.
집안의 비법대로 직접 만든다는 소세지
다른 사람이란 바로 히틀러다. 히틀러는 바로 이 호프브로이 양조장을 개조한 ‘뷔르거브로이켈러’라는 맥주홀에서 연설을 한 뒤 폭동을 일으키고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다. 이런 의식의 흐름은 어쩐지 안드레아스 씨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툼브로이의 맥주들은 튀지 않는다. 앞다퉈 성격을 드러내지 않고 깔끔하고 중후하게 자리를 지킨다. 샘플러로 6종류의 맥주를 마신 뒤 호밀로 만든 로겐 맥주를 석 잔이나 더 시켜 먹은 것은 안 비밀이다. 안주 역시 정통 독일식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라즈베리잼에 찍어 먹는 슈니첼이나 독일식 소시지 역시 엄치 척을 할 만한다.
다시 독일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꼼꼼하게 맛을 비교하며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멋진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