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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로스 Jan 11. 2019

어린 마음에

초등학교 3학년 때 매일 등하교를 하던 길에 문구점이 하나 있었다. 간판도 실내 인테리어도 처참했지만 내가 그곳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디스플레이 되어있던 게임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앞에 살던 친구네 집에서 처음으로 해본 쿵푸 게임이 있었다. 왼쪽으로 계속 전진하면서 발차기와 정권 지르기만 하는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에 그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지는 바람에 그 게임을 다시 하지 못 했고, 그때부터 게임기가 사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그 문구점에 불쑥 들어갔다. 50원짜리 동전 초콜릿을 하나 사면서 지나가는 말투로 문구점 아저씨한테 앞에 있는 게임기 가격을 물어봤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을 듣고 나는 좌절했다.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는 상황도 아니었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에게 설명을 하고 오백 원에서 천 원 사이의 돈을 받던 시기였기에 그 좌절감은 더욱 컸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돈을 모아봤다. 샤프가 고장 나서 살 때도 제일 싼 칠백 원짜리를 사서 삼백 원을 모았고, 공책을 살 때도 페이지가 적은 걸 사고 대신 글씨를 작게 써서 오래 썼다. 그렇게 나름 악착같이 최대한 모았던 돈이 한 만 원 후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금액을 모으는 게 빨리 갖고 싶었던 내 인내심의 한계였던 것 같다.


하루에도 두세 번 이상 창문을 사이에 두고 게임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부모님에게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때가 내 생일이 되기 세 달 전쯤으로 기억한다. 내 생일인 8월은 아직 아니었으니까.


나의 단식 투쟁과 툴툴거리는 태도에 우리 엄마는 게임기를 사주겠다는 허락을 했고, 나는 그 날 너무 기뻐서 부모님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절대 공짜로 닦아주지 않는 아빠의 구두도 닦아주며 기다림을 시작했다. 그때만큼 수시로 기대와 절망을 오가며 기다려봤던 적은 아직 없다. 당연히 사줄 거야, 아마 못 사주지 않을까?라는 혼자만의 판단에 하루에도 두세 번씩 심장이 휘청거렸다. 


나는 철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평소엔 잘 참는 걸 미덕으로 삼았으며 남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부모님에게 무리한 부탁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면을 갉아먹는 바보 같은 짓이란 생각이 든다.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덜 참고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인내하며 살던 내가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게 됐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게임기를 통해서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던 듯하다. 아무래도 친구들에 비해선 딱히 즐거운 걸 하면서 지내진 못 했으니까.


시간은 참 느릿느릿하게 지나서 어느덧 내 생일날이 됐다. 매년 부모님이 사주시던 치킨 한 마리는 대충 먹는 둥 마는 둥하면서 물어봤다. 게임기 언제 사러 갈까, 어제 보니까 아직 팔더라, 이거 얼른 먹을게. 내가 좋아하지 않는 퍽퍽한 가슴살 부분을 최대한 빨리 씹으며 마지막으로 먹고 있는데 엄마가 그러더라.


미안해, 이번엔 못 사주겠다.


눈물이 났다. 얼마나 속상했는지 순식간에 꺼억꺼억 울고 짜증 내면서 엄마한테 약속 지키라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 같으면 합리적인 말로 날 설득하려고 했던 엄마인데 그 날따라 왠지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다음번엔 꼭 사주겠다면서 말이다.


어린 마음에 트라우마가 됐던 걸까. 그 날 이후로 부모님이 뭔가를 사준다는 약속에 대해선 불신이 생겼다.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선 아마 지키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숙이 들어섰다. 엄마 아빠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나와 동생에 대해선 누구보다 애착이 강한 부모님들이 약속을 못 지킬 정도라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겠는가. 그걸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버렸다. 우리 집은 돈복이 없어서 언제든 약속을 못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날이 지나고 엄마와 나의 사이는 다시 좋아졌다. 딱 하루만 삐졌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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