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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Dec 17. 2021

코로나 격리 병동

   그제 밤 펀드 출자자들을 데리고 술집에 갔었다. 엄격한 코로나 방역 시국에도 단골집은 예약을 받아 주었다. 우리 펀드에 돈을 맡긴 분들인데 이른 저녁 끝나는 맹숭한 자리로 그들을 대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겉보기에는 여느 술집과 다름없었지만 화장실 옆 철문을 열자 다른 방이 나왔다. 주인은 이곳에서는 9시 이후에도 식사를 계속할 수 있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오후 네 시 회의가 끝난 직후 그 방에 들어갔으니 아홉 시간 꼬박 술을 마신 셈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새벽 두 시 경인 듯했다. 다섯 시간 남짓을 자고 일어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편도에 이물감과 함께 통증이 느껴졌는데, 단순히 숙취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점심 전에 혹시 몰라 체온을 측정해보니 37.5도가 넘었다. 관리팀 상무의 채근으로 근처 보건소에서 검사를 했고, 저녁이 되기 전 보건소 담당자는 전화를 걸어와 내가 확진임을 알려주었다. 검역관들이 하얀 방역복을 입고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TV에서만 보던 하얀 사람들이 사무실로 들어오니 발소리도 저벅저벅 위압적이었다. 바빠서 말투가 저렇겠지 싶은데 그들이 어제저녁 방문한 곳이 없느냐 물어볼 때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어제 그 가게 주인은 자기네들이 방역당국에는 손님들이 모두  9시에 귀가했다고 이야기하겠다 했으니 태연한 척 그 식당 이름을 알려줬다.


   열이 나고 목이 아펐지만 증세가 심한 편은 아니었다. 입원 대상은 아니었고 대신 격리 시설 입소로 안내가 되었다. 격리 시설은 나와 같이 증세가 심각하지 않은 환자를 모아 두고 아침저녁으로 검사를 하며, 음성이 확인될 때까지 잡아두는 곳이라 했다. 2인 1실이었다. 다른 누군가와 한 방을 쓴다는 게 너무나도 싫었지만, 1인실은 불가하다는 대답만 들었던 터라 일주일만 참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카카오톡으로 주변 지인들로부터 정부의 허술한 방역 실태라는 글을 받아왔던 터라 건물을 들어서면서부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던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친절했고, 깨끗했다. 내가 받은 글에는 분명 무능한 정부의 대응으로 감염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했는데.


“윤성수 님 211호 배정되셨습니다. 혹시 증세가 심해지거나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인터폰으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편히 쉬세요.”


   방으로 들어가자 두 개의 침대가 있었고 그중 한 곳에는 노인이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단정한 단색의 셔츠를 걸치고 코르덴바지를 입은 그 노인은 독특한 느낌을 풍겼다. 내가 문을 닫자 책에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본다. 눈빛이 형형한데 참으로 선한 느낌이다. 나와 마주친 눈이 커지더니 몇 초간 말을 떼지 못하다 어렵게 뗀다.


“혹시 성수?”


   그래 나도 기억이 났다. 해남이. 정말 오래간만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스물다섯이 넘기 전 동네에서 종종 마주치던 그 친구. 황해남.


   누구인지 알아채고 나니 앉아있던 노인이 자연스레 젊어 보인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백발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였나 보다. 자세히 뜯어보니 나와 동년배, 올해 육십을 맞는 늦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목소리는 나긋했다. 말투가 급하지도 않았고 부드러웠다. 반가워했다. 30년이 넘었지? 이런 데서 다 만나네.


   나도 반가워하면서, 어쩌다 이런데 까지 들어온 거야?라고 물었는데 아차 싶었다.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다 들어왔다고 말은 할 수 없고, 혹시 되물으면 어물쩍 넘어가자 마음먹었다. 해남은 바닷가에서 작은 민박을 한다고 했다. 손님을 받는 민박은 아니고 후배들을 위해 조그마한 방 몇 개를 거의 거저로 빌려주듯 한다. 아무래도 그 방에 묵던 후배가 아무래도 서울 다녀오면서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아. 라며 웃는다.


   시골에서 민박이라니. 기억 속 해남은 그럴 일을 할 친구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교무실 앞에 붙여있던 전교 석차 대자보에 나와 늘 비슷한 자리에서 올라있던 친구였다. 대체 어쩌다가 민박을 하고 있는 거야?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자 수줍게 평생 글을 써서 이제야 부족함을 덜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나에게 남는 공간을 조금 내어놨을 뿐이라고 했다. 글이라니? 재차 물어보자 시랑 잡다한 글을 써서 먹고살았다고 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다 졸업하고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났네 하면서 웃었다. 거꾸로 해남은 나에게는 지난 30년 어떻게 보냈는가 물어왔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이야기했다. 그 누 구보다도!라는 사족까지 붙여가면서, 한눈에 봐도 가난해 보이는 옛 친구 앞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에 힘이 들어가 평소보다 더 격한 말투로 말하고 말았다. 응 그럼, 정말 열심히 살았어.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갈 때만 해도 지금처럼 될 줄은 몰랐지. 전자회사에서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하던 평범한 연구원이었는데 우연히 투자회사로 이직을 했어. 이후 몇 군데 투자사를 더 경험하고 내 회사를 차렸지. 처음 몇 년 고비를 어렵게 넘길 때만 해도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주위 누구보다도 성공한 사람이 되었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네 성수 너 정말 성공했구나. 하면서 활짝 웃는 해남 눈이 아주 깊었다. 저렇게 깊은 눈은 언제 봐도 날 화나게 만들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부분 발 끝을 보거나 불안하게 시선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웃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나를 보는 눈은 그런 눈이었는데 해남의 눈은 깊고 지긋했다. 해남은 인자한 표정으로 열심히 살았구나 하며 기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가 우리 아버지야 뭐야. 저런 표정을 짓는 해남에 살짝 부아가 났다.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아버지는 저런 인자한 표정을 지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버지가 떠오르다니 생경했다.


   짐을 풀고 간단히 씻고 나오면서 물어봤다. 글 쓰면서 사는 건 살만 해? 다시 뭔가를 읽던 해남은 고개를 들어 이야기한다. 낮게. 응. 난 글 쓰는 게 좋아.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건 정말 다행이었어. 내가 질문을 정정했다. 아니 먹고 살만 하느냐고, 그러니까 돈벌이는 어떠냐 말이야. 난 시인이라는 직업이 전업으로 존재할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말이야.라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냈다. 동시에 묘한 통쾌함도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 해남과의 비교로 넌덜머리가 났던 과거의 나에게 주는 선물. 그래 그랬다. 그 시절 해남은 공부도 글쓰기도 잘했다. 운동도 잘했고 누구한테나 친절했던 그런 친구였다. 나는 그런 해남을 이겨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성적이 좋아도 친구들은 나보다 해남을 더 좋아했다. 형제가 많아 옷을 돌려 입는다면서 후줄근한 옷을 입고 학교에 와도 친구들은 그의 스타일에 높은 점수를 줬다. 나이키 신발 하나 없었던 그였는데. 점수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우리 부모님과는 달리 네가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하려무나, 그것이 인생이라며 독려해주신다던 해남의 자랑에는 질투에 구역질이 났었다.


   나는 너 같은 상장사 대표는 아니라서 딱히 모아놓은 돈은 없다고 했다. 동갑내기 아내가 최근 장애를 얻어 요즘 부쩍 돈 쓸 일이 많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부족한 건 아니어서 다행이지 뭐야라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괜찮아. 그 이야기는 다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짜증이 난다. 말을 이어나가는데, 나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걸 평생 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 시를 쓰고 글을 써. 술도 즐기곤 했는데 요즘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서 아쉽지만 끊었어. 날이 좋으면 카메라를 들고나가고, 비가 오면 집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들어. 커피도 직접 볶아. 하와이안 코나를 좋아하는데 비싸서 아쉽지만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사서 먹곤 해. 뭐 이런 일을 부족함 없이 할 수 있으니 너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부자가 아닐까? 요즘 인세로 벌어들이는 돈을 어떻게 의미 있게 쓸지가 조금 고민이긴 해. 아주 적은 돈이긴 해서 일단은 후배들에게 글 쓰는 방을 빌려주기로 마음먹었어. 덕분에 이렇게 코로나에 걸려 이곳에 와있지만 말이야.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다.


   꼬깃한 종이를 건네주는데 전화번호다. 자기는 명함이 없다며 언제 기회가 되면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 자기는 오늘 오후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면서 이제 나가봐야 한다고 했다. 반가웠다고.


“너는 왜 행복해 보이지?”


   억울하다는 듯이 튀어나온 나의 한마디에 해남의 눈은 토끼처럼 커졌다. 내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평생을 노력하며 살았어. 적어도 나는 너처럼 멋대로 살진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똑같은 것 같아. 대체 이유가 뭐지? 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왜 아직 나는 이렇게 힘드냐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펀드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어. 열심히 투자를 해. 게으른 직원은 자르고 경쟁자들은 내쳐가면서 까지 이 자리에 왔단 말이야. 근데 왜 나는 계속 목이 마르지? 나는 부자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 재산을 이렇게 모았는데 왜 이런 생각이 지워지지 않을까? 난 한 번도 그 답을 시원하게 받아본 적이 없어. 대체 너는 뭐길래 그래?


   미소 지었다. 그 꼴 보기 싫은 미소. 30년 전과 같은 그 미소. 그런 마음을 갖는 나 스스로에게 일종의 혐오감이 일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코로나의 증세에 이런 착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현기증이 밀려온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침이 넘어가면서 사레가 들리며 심하게 기침이 나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환자가 일단은 좀 쉬어야 하지 않겠냐며 침대로 나를 이끈다. 나를 부축하던 그의 팔목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대체 넌 어떻게 한 거냐고!


   몇 초간의 정적 끝에 입을 열었다.

“난 삶을 삶 그 자체로 채웠을 뿐인데…”


   연한 미소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카디건을 걸치고 가방을 둘러맨 해남은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며 연락하겠다는 안부를 남겼다. 혼자 남은 방에서 닫힌 문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리다 혼잣말.


“씨발. 좀 알아듣게 설명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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