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17편의 러브레터>
죽음에 대해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던가.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한다는 거라고. 내 식대로 하자면 이렇게 적을 수 있을까. 죽는다는 건 더 이상 영화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일 것이다. 죽음에 관한 문장에서 내가 내 삶을 유지해야 할 유용한 근거 하나를 얻게 되는데, 결국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므로 나는 살아야 한다.
그렇게 미클로시(밀란 쉬러프)는 살았다. 자신의 생명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듣고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직 사랑하는 힘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추동력이었으므로. 시한부라는 진단을 듣고서 곧바로 117명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장면이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의 간절한 편지에 응답한 여인은 열일곱 명. 미클로시는 자신이 사랑할 사람을 한 명 선택한다. 릴리(에모크 피티)라는 여인이다.
미클로시가 릴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친구 해리에게 그는 왜 자신이 릴리에게 마음이 가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알파벳 b를 우리 엄마처럼 써.” 미클로시는 덧붙인다. “그리고, 아프대. 나도 아파.” 이 장면은 흥미로운 논리학 하나를 우리에게 던져주는데, 너의 ‘있음’이 나의 ‘없음’을 채워줄 거라 기대하며 너에게 매혹당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사랑은 나의 ‘없음’이 너의 ‘없음’을 알아볼 때 발생한다는 것. 미클로시와 릴리 둘 모두의 ‘없음’은 단연 둘이 앓고 있는 폐결핵과 신장 질환일텐데, 이것은 사랑의 성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촉진시키는 둘의 매개물이라는 것. 신형철은 이 점에 대해 유려하게 이미 표현한 적 있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6쪽)
이렇게 느낀 건 릴리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새벽의 열기’에서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클로스는 글씨를 정말 예쁘게 잘 썼다. 아름다운 글씨, 우아한 세로획. 단어들 사이에는 다시 숨을 쉬는 데 필요한 만큼 여백이 머물렀다. 편지를 다 쓰면 그는 봉투를 찾아내서 집어넣은 다음 봉인하고, 머리맡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에 기대 놓았다.” (피테르 가르도시, 새벽의 열기, 12쪽)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서 아름다운 글씨체만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 빈 공간을 찾은 것이다. 릴리도 미클로시의 첫 편지에서 그의 ‘없음’을 알아차린 거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미클로시와 릴리, 둘 사랑의 이행과정이 편지, 목소리(전화), 얼굴이라는 점은 필연적이다. 편지부터 시작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또 편지여서 사랑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편지는 너의 부재를 더욱 감각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나는 너의 빈자리에 내 사랑을 하나씩 채운다. 자주 얼굴이라는 너의 현존에서부터 시작하는 오늘날의 사랑이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사랑의 깊이다. 우리의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알토 미디어(주)에서 제공한 스크리너로 관람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