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서늘한 여백

영화 <콜드 워>

by 이정식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으로 새어 들어올 때, 그리 희지 않던 것들까지도 창백하게 빛을 발한다.
밤이면 불을 끈 거실 한쪽에 소파침대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하는 대신 그 해쓱한 빛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흰 회벽에 어른거리는 창밖 나무들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 한강, ⟪흰⟫,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30. (문학동네)


어둠 속에서 어떤 인물은 희어 보인다. 그 소설가의 말처럼. 시종 어두컴컴한 시절에 그 사람은 희었다. 창백하고도, 따뜻한 얼굴로. 차가운 것은 시대였지, 사람이 아니었다. 냉혹한 시대의 공기는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 사랑으로 덥혀져 따뜻한 날숨이 되어 나온다. 비록 공중으로 흩어져버릴 지라도.



movie_image-11.jpg 영화 <콜드 워>


파벨 파블리콥스키 감독의 <콜드 워>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차가운 전쟁’의 시대가 배경이지만, 영화는 그 시대를 주목하지 않는다. 내내 카메라는 그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 담는다. 그 얼굴은 무엇을 담고 있길래. 그러니까, 그 창백한 얼굴에 알알이 새겨진 사랑은 어떤 모습이길래.


사랑에서 그리움은 종종 자신의 존재 증명을 ‘여백’으로 한다. <콜드 워>에서 빅토르(토마즈 코트)가 그랬고, 줄라(요안나 쿨릭) 역시 그랬다. 두 사람은 함께 있으면 다퉜고, 떨어져 있으면 서로의 여백을 느끼며 그리워했다. 사랑을 하는 것은 만남이지만, 사랑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만드는 건 둘 사이에 난 여백이다. 떨어진 거리이자 침묵이며, 빈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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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드 워>



차가운 시대는 기어이 둘 사이에 들어앉아 그곳에서 한 없이 넓은 여백을 만들지만, 간절한 사랑은 그것을 그리움의 불을 지피는 연료로 사용한다. 사랑은 여백을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굵은 펜촉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새하얀 종이의 뒷장처럼, 여백 안에서 사랑은 간절한 추억을 빠짐없이 필사하며 그곳을 채운다.


줄라에게 빅토르의 여백은 ‘빈 자리’였고, 빅토르에게 줄라의 여백은 ‘침묵(노래의 부재)’이었다. (카츠마렉의 신고로 공연을 관람하던 빅토르는 파리로 추방된다. 무대에서 공연하던 줄라는 뒤늦게 그가 떠난 빈 객석을 응시한다. 파리에서 빅토르는 영화음악과 관련된 일을 한다. 영화 장면에 맞게 피아노 소리를 넣을 타이밍에, 줄라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빅토르에게 음악은 줄라의 상징이기도 했다)


movie_image-9.jpg 영화 <콜드 워>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진 사람이 유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떠난 자리다. 노래가 흘러간 자리고, 바람이 너울너울 건너간 이후의 자리다. 그 여백은 빈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니다. 간절한 사랑은 그곳에 자신의 사랑을 채워 넣으니까. 그래서 여백이 사랑을 증명해낸다. 서늘하리만큼 한없이 넓은 그 여백조차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파벨 파블리롭스키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4:3 비율인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종종 스크린 하단에 치우쳐 있다. 화면의 여백조차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감독은 그려낸다)


줄라는 수용소에서 빅토르를, 빅토르는 부박한 환경에서 줄라를 건져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제 사랑을 건져내려 한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카메라는 차례로 성당과 벽에 그려진 예수상, 그리고 뚫린 천장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마치 거기로 올라가려는 듯)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낡은 의자에서 두 사람은 오래도록 세상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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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드 워>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난다. 카메라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다른 곳을 비춘다. 두 사람이 앉았던 자리를. 그러니까, 빅토르와 줄라의 여백을. 현실은 여백이 있지만, 영원은 충만하다. 그들이 떠났으므로 현실 속의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텅 빈 의자다. 그러나, 영원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충만할 것이라고, 우리는 텅 빈 의자에 사랑을 채운다.


그 소설가는 그 사람의 얼굴을 뚜렷하게 기억해 냈을까. 단지 ‘어둠 속에서 희어 보이는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데’ 떠오른다는 그 사람을. 그 윤곽과 표정이 의식으로 명료하게 들어왔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녀도 여백을 채우는 중일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보도되었습니다. (2019.2.18.)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1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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