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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자 Dec 22. 2016

음식을 담는 그릇들

오늘은 음식 대신 음식을 담는 그릇들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1층 패트리 코트 식당 (Petrie Court Cafe)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545번 방에는 예쁜 그릇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8세기 사치품 쇼핑 (Luxury Shopping, 1700-1790)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갤러리는 파리의 세느강에 있는 두 개의 섬 중 하나인 일 생 루이 (Île Saint-Louis)섬에 있었던 상점의 떡갈나무로 된 앞 부분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각종 그릇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1920년 제이 피 모건 (J. P. Morgan)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18세기 파리의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아주 귀중한 유물입니다. 1차 세계대전 중 해체되었고 원래의 페인트칠은 다 벗겨지고 그 밑에 있던 나무들이 손상이 많이 된 상태였던 것을 박물관에서 복원을 한 것입니다.

그럼 18세기 프랑스 그릇들 중 가장 유명한 세브르 제작소 (Sèvres Manufactory) 작품들을 보겠습니다. 아래 보이는 한 쌍의 꽃병 역시 545번 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789년 바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세브르 제작소라고 불리는 곳은 세브르 지역에 있는 왕실 도기 제작소 (Royal Porcelain Manufactory at Sèvres)를 일컫습니다.

세브르 (Sèvres)는 파리에서 10km정도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로 왕실 도기 제작소가 세브르 국립 제작소 (Manufacture Nationale de Sèvres)로 이름이 바뀌어 아름다운 도기류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세브르의 왕실 도기 제작소는 루이 15 세(1710-1774)와 그의 정부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 1721-1764)이 1740년 만든 뱅센 제작소 (Manufacture de Vincennes)가 1756년 세브르 시로  옮긴 것입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1745-1751년까지 루이 15세의 최고 시녀 (chief mistress)로 왕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다양한 조언을 해주는 비서같은 직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에 가면 당시 그녀가 썼던 방이 있습니다. 왕의 최측근으로서 막강한 권력과 함께 엄청난 시기와 질투, 특히 왕비의 눈에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아주 정치적으로 행동을 잘해야 했고 그녀는 훌륭하게 그 일을 잘 해냅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건강이 나빠져서 시종의 직책은 계속 할 수 없었지만 결핵으로 42세로 죽을 때까지 왕이 가장 아끼는 여인으로 남습니다. 세브르에 도기 제작소를 지은 1756년은 바로 그녀가 퐁파두르 후작부인 (Marquise de Pompadour)으로서 왕실에서 가장 권위있는 자리 중 하나인 여왕의 13번째 시녀가 된 해이기도 합니다. 건축과 장식예술에 조예가 깊어 프랑스 예술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도기에도 관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왕실 도기 제작소를 세브르로 옮긴 것은 루이 15세가 그녀를 위해 지어준 성인 벨뷔 성 (Château de Bellevue)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죠. 이 성은 프랑스 혁명 중 약탈당하고 1823년에 대부분 철거됩니다.

파리의 동쪽에 위치한 벵센이라는 도시에 왕실이 사용하지 않는 성 (Château de Vincennes)을 1740년부터 왕실 도기 제작소로 사용했고 여기서 제작된 도기들은 뱅센 도기 (Vincennes porcelain)라고 불리었습니다. 545번 방에서도 뱅센 제작소에서 1752년 경에 만든 꽃병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세브르나 뱅센의 도기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파리의 장식 미술관 (Musée des Arts Décoratifs)이나 세브르의 도예 박물관입니다. 아래 보이는 예쁜 컵도 장식 미술관 소장품입니다.

18세기 유럽에서 도예의 중심지는 세브르가 아니라 파리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샹띠이 (Chantilly)와 독일의 마이센 (Meissen)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도기들은 뱅센 도기처럼 지역명을 붙여 샹띠이 도기 (Chantilly porcelain), 마이센 도기 (Meissen porcelain)로 불렸습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이 두 지역의 도기에 필적할 만한 도기들을 세브르에서 생산하려고 했었죠. 샹띠이 성 (Château de Chantilly)에 가면 샹띠이 도기들을 전시해 놓은 방이 있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 다루고 있는 545번방에 아래의 작품이 있습니다. 1735-1740년 경에 만들어진 양념통입니다. 디자인이 유럽보다는 동양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샹띠이 도기들은 일본의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샹띠이 성의 주인인 부르봉 가문의 콩데 왕자 (Louis Henri de Bourbon, Duke of Bourbon, Prince de Condé, 1692-1740)가 샹띠이 제작소를 만든 사람이자 광적인 동아시아 도자기 수집가였습니다. 아래의 양념통도 일본의 규슈 북서쪽에 위치한 아리타 마을에서 만든 아리타 도기 (Arita Ware; 有田焼)에서 주로 보이는 카키에몬 스타일 (Kakiemon;柿右衛門)로 만들어진 것으로 흰 바탕에 그림을 그려넣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를 통해 유럽에 소개된 이 스타일은 엄청난 인기를 누립니다. 그런데 아리타 도기의 창시자는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왕실에서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조선 도공의 그림자를 보게 되네요.

독일의 마이센 도기 (Meissen porcelain)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2층 복도에 전시된 중국 도기들 가운데 (201번 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직도 생산되는 도기인 만큼 유명한 로고를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밴더빌트 가문같은 미국의 신흥 부자들이 따로 수집할만큼 인기가 있었습니다. 프릭 미술관 (Frick Collection)에 가시면 이번 글에서 설명하는 대부분의 도기들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복숭아 모양의 와인 주전자에서 보이듯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통해 유입된 중국의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중국풍 (chinoiserie)의 인기가 대단해서 부유층과 귀족들은 중국적인 것을 모방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세브르의 도기 제작소에서 생산된 도기들도 중국이나 일본풍으로 제작된 것이 많았지만 기술적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마이센 도기들은 주로 경질 자기  (hard-paste porcelain)로 제작되었고 세브르 도기는 연질 자기 (soft-paste porcelain)로 제작되었습니다. 경질 자기는 점토와 유약을 사용하여 만든 자기이고 연질 자기는 찰흙이나 골회 (bone ash)로 만든 자기로 본 차이나 (bone China)같은 자기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세브르 도기 제작소는 자금 부족 등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지만, 1800년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인 알렉상드르 브롱니아르 (Alexandre Brongniart, 1770–1847)가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그는 1847년 죽을 때까지 소장으로 일하며 구식 디자인의 도자기들을 판매 처분하고 신고전주의  (neoclassical) 스타일의 도기들을 생산하며 19세기 유럽의 트렌드를 반영한 작품들로 세브르 제작소를 부활시킵니다. 세브르 제작소는 그의 지휘아래 1804년 연질 자기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비용면에서 더 효율적인 새로운 방식의 유약처리된 도기들을 생산합니다. 아래에 보이는 이미지는 세브르 제작소에서 1813년에 제작한 아침식사용 도기들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53번방에 있습니다. 나폴레옹 1세가 그의 양아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 (Eugène Beauharnois)의 부인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1789년 제작된 세브르의 꽃병과는 디자인이 많이 다르죠? 19세기 초반 제국 취양 (Empire taste)라고 불리는 스타일로 금박장식을 많이하고 인물화를 크게 넣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질 자기 생산을 중단하고 경질 자기들도 생산하면서 브로니아르는 1824년부터는 프랑스 각 지역의 풍경을 모티브로하고 그 지역의 주요 인사들의 초상을 테두리에 넣은 디자인을 세브르 도기의 주요 테마로 정합니다. 554번방에 가시면 아래와 같은 그 시기의 세브르 도기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브로니아르의 임기 기간동안 세브르의 도기들은 90개가 넘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지만, 과거의 미술 대가들의 작품 스타일을 모방하는 작품들도 많이 제작했습니다. 556번 방에 있는 1836년 제작된 아래의 컵은 모양 자체는 르네상스시기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은 와인잔 모양을 본땄지만 화려한 색깔의 디자인은 16세기 프랑스의 생 포쉐르 도기 (Saint-Porchaire wares)를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이 컵의 디자이너 애메 쉐나바르 (Aimé Chenavard, 1798-1838)의 성을 따서 쿠페 쉐나바르 (coupe Chenavard)로 부르는 이 컵은 아이스크림을 담는 디저트 컵이었습니다.

554번 방에 있는 아래의 꽃병은 1832년에 제작하고 1844년에 장식한 것으로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세브르 도기입니다. 19세기에는 그리스, 로마 미술뿐 아니라 과거 유럽 미술의 대부분 양식의 복고가 유행했고 중세의 고딕 스타일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세브르 제작소 역시 과거 미술 양식 두, 세개를 섞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꽃병 형태는 12세기 양식에서 표면의 장식은 16세기 도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입니다. 화병 중심부에는 코페르니쿠스, 구텐베르그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1847년 브로니아르 사망 이후에도 세브르 제작소는 절충주의 (eclecticism)와 역사주의 (historicism)를 계승한 작품들을 생산합니다. 1855-1861년 경에 세브르에서 만든 도기가 556번 방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여러 양식들의 종합세트처럼 보입니다. 커피와 차 세트 (coffee and tea service)로서 세브르 제작소는 이 도기들을 투명세공으로 장식한 중국풍 세트 (déjeuner chinois reticule; Chinese service with openwork decoration)로 묘사합니다. 형태는 중국과 중동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분홍색과 금색의 사용은 유럽적인겁니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세브르 도기는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여러 양식들을 참조하고 재해석한 작품들로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556번 방에는 1879년 제작된 도기도 있습니다. 1878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 박람회 (Exposition Universelle; 이 때 자유의 여신상 머리가 전시되었었죠)의 1등 수상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19세기 말의 많은 비평가들은 세브르 도기 디자인이 모더니즘에 반하는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뒤쳐진 것의 상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아래의 수상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브르 도기의 꽃문양이 지겹다고 말하며 모던 아트의 방해꾼으로 비난받았습니다. met-89

이 무렵 아르누보 (Art Nouveau)가 등장하며 세브르 도기는 모더니즘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20세기에 들어 세브르도 변혁을 꾀합니다. 556번 방에는 1900-1904년에 제작된 모던한 세브르 커피 세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르누보 스타일로 변신한거죠. 기존의 반짝반짝 빛나는 유약처리를 버리고 약간은 거칠어보이는 표면처리를 선택한 것은 자연의 풀이나 나무를 모티브로 한 아르누보 스타일에 충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색깔과 모양에 있어서 회향 (fennel)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세브르 제작소는 2010년 세브르시의 도예 박물관 소속이 되었습니다. 1824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 역시 세브르 제작소의 감독이 도예 전시를 위해 설립한 곳입니다.  세브르 대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가 보는건 어떨까요?

뉴욕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외에도 프릭 미술관 (Frick Collection)에 가시면 세브르 도기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작년과 올헤 초에는 특별전도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프릭에 가셨던 분들은 제가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하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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