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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여자 의사 Nov 29. 2020

골든컵을 찾아서






 생리컵을 4년째 사용하고 있다.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즈음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생리대에 대한 불편감 혹은 불안감이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그저 평생 쓰게 될 일회용 생리대의 양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에는 초경을 12세 즈음했는데, 평균적인 생리기간은 7일이고, 하루에 약 7개의 생리대를 사용했다. 만약 50세에 완경을 한다면 약 2만 개쯤의 생리대를 평생 사용하게 되고, 이를 내가 썼던 생리대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800만 원 정도가 나온다. 이건 생물학적 여성으로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필수적으로 감당해야 할 금액이다. 그래서 나는 생리전증후군으로 심히 빡칠 때나 쟁여놓은 생리대가 다 떨어져 또 대량주문을 해야 할 즈음이면 친구들에게 생리대공사의 필요성을 설파하곤 했다. 기호 식품인 담배인삼공사도 있는데 대체 왜 인구 절반의 생필품인 생리대공사는 없는 것이냐고! 


 하지만 사실 저 8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실제로 2만 개의 일회용 생리대가 폐기되어 거의 영원에 가깝게 분해되지 않는 동안 발생할 환경 파괴의 영향과 그걸 복구하기 위해 발생할 생태학적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고작 나 따위의 인간 한 명이 발생시켜도 될 쓰레기의 양이 아니라고 문득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쓰고 버린 생리대의 개수 1만 개를 채울 때 즈음 서둘러 대안을 찾는 여정을 떠나보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생리컵에 대해 알게 됐다.


 생리컵에 대해 알게 된 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생리컵에 대한 의학 논문이 1950년부터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생리컵의 존재를 2016년에야 알게 되었는데, 생리컵은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0년부터 쭉 존재해왔던 것이다. 

 초경을 한 이후 당연히 엄마에게 생리대 사용법을 배웠다. 탐폰의 존재는 고등학생 때 친구에게서 들어 알게 되었지만 누구도 그 사용법이나 장점, 단점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생리대는 나에게 유일무이한 생리용품이 되어 있었다. 그건 의사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엄마는 스스로의 생리용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선택지를 제공받지 못 했던 것이다. 그 사실조차 그제야 알았다.







 생리컵의 작동 방식은 질 내부에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든 작은 컵을 넣어 자궁 경부에서 흘러나오는 혈액과 자궁내막의 탈락물을 받아내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컵을 빼내어 비워내고 씻어서 다시 넣는 것이다. 하나의 생리컵을 꾸준히 재활용하여 1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전 세계에는 아주 다양한 생리컵이 존재하는데 그 모양, 탄력, 크기가 정말 천차만별이다. 이는 모든 여성의 질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리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질에 대해서 아는 것이다. 음부에서부터 자궁경부까지의 길이를 직접 손가락을 넣어 재보고, 질 벽을 만져보며 근육의 탄력도를 스스로 평가해본다. 질이 어떤 방향으로 주행하는지 살펴보며 동시에 주변에 만져지는 구조물에 대해 입체적으로 생각해본다. 


 ‘골든컵’이란 이런 심사숙고를 거쳐 고른 나에게 딱 맞는 생리컵을 지칭하는 말이다. 나의 경우 골든컵을 찾기까지 세 번 정도의 시행착오가 있었고 약 5개월이 걸렸다. 생각보다 많은 초기비용을 투자해야 했고, 생리혈이 새서 속옷과 이불을 수시로 빨아야 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골든컵을 찾은 후, 따란! 신세계가 열렸다.   

 모든 여성이 공감하는 따뜻한 굴을 낳는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고, 크로스핏과 수영을 365일 언제나 격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생리기간에도 노팬티로 홀가분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니! 정말이지 엄청난 해방감이었다. 


 그리고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패드에 묻은 거무튀튀한 색과 꾸리한 냄새가 아닌, 컵에 고인 내 순수한 생리혈 자체의 색깔과 점도를 보고 냄새도 맡아 보면서, 내 몸에서 한 달에 한 번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음 뭐랄까, 내 몸을 긍정하는 느낌이랄까. 그건 ‘나는 내 몸을 너무너무 사랑해’ 따위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그건 내 몸이, 자신을 더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라면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일부를 깎아내고 쥐어짜며 피를 흘리는 선택쯤은 기꺼이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는 것이었다. 바로 그 강인한 생명력을 체험하는 경험은, 단순히 몸에 대해 배울 때보다도 훨씬 더 내 몸을 긍정하게 했다. 


 물론 생리컵은 완전한 대안이 아니다. 질염이나 자궁경부의 염증이 있는 경우에는 고인 혈액이 미생물의 번식 배지가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치료 후 사용해야 한다. 독성쇼크증후군과 탈장의 사례가 보고된 바 있으며, 공중화장실에서 사용하기가 까다롭고, 미처 사용법에 익숙해지지 못한 상태에서 컵을 빼지 못할 경우 산부인과에 가서 빼야 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스스로의 생리용품을 고를 때 충분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 선택지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내 몸을 생각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내 몸을 위한 선택을 스스로 하는 경험은 반드시 내 몸을 긍정하는 느낌을 알게 한다.  


 그러니 여성이 아니라도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당신의 몸이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으로 생동하고 있는지 체험하길 바란다. 

 그럼, 당신의 골든컵을 찾는 여정에 건투를 빌며. 오늘도 모두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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