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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Dec 06. 2020

난 주부가 되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 밤 10시.

오랜만의 우아한 나들이. 읽고 쓰는 일도 좋지만 듣고 적는 일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성장시킨다. 
이번 줌 토크를 통해 명확히 정의 내린 것이 있다.
“난 주부가 되기로 했다”


일과 집안일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늘 일하는 사람이고 싶었던 난 아이를 키우면서 늘 삶의 중심은 일이었다. 그 일은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일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일하는 사람’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지금 내 시간의 대부분은 집안일, 육아로 보낸다. 놓고 싶은 않은 일을 간신히 붙잡고 있지만 집안일에 비하면 투여하는 시간이 10분 1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도 버겁다. 정체성의 혼란 넘어 일하고 싶은 마음과 육아의 책임 사이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사이 내 몸과 마음은 점점 지칠 때로 지쳐가던 차였다.


두 언니(김희정 번역가, 이화정 작가)는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주부입니다.”
아주 당당하고, 까탈스럽고, 자유롭게.
주부의 정체성을 귀하게 여기는 50대 프로 번역가와 프로 작가의 이 솔직한 고백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도 덩달아 용기 냈다.
“난 주부입니다!”


주부든, 에디터든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은 ‘나’보다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했다.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번역가, 작가가 되었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그녀들의 얼굴, 언어에서 고스란히 배어났다.
뭔가가 되기 위함보다는 좋은 것, 유익한 것을 익히고 기록하며 즐겁게 ‘나의 곳간’을 채워나가자고. 뜨겁게 온도를 달구려 버겁게 애쓰기보다는 성실하고 부지런히 삶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면 된다고 안심했다. 불안,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고 일단 눈앞에 초점을 맞춰 시작해 보자고, 어떤 모양, 어떤 모습이든 알찬 일상을 살면 된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당당하고, 까탈스럽고, 자유로운 50을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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