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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Jan 25. 2022

버려진 냉장고에 대한 짧은 단상

다정했던 순간, 글이 되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 왜 없는 거지? 왜 그런 거지? 그런 질문을 하는 대신에 이렇게 생각하라고 했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남편이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죽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최은영, 밝은 밤>


비 오는 날 아파트 화단 한편에 버려진 냉장고가 서 있다. 오래된 냉장고 안은 텅텅 비었다. 긴 시간, 쉼 없이 그 누군가의 생 지켜냈을 사물은 코드가 뽑힌 채 쓸모를 잃었다.

어떤 저항도 없이.

냉장고는 요란하게 마지막을 버텼을 것이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던 어느 날 코드는 ‘툭’하고 뽑혔다. 그리고 버려졌다.

어쩌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버텨냈어도 다가올 일이었던 것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때가 되면 다가올 일들.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게 맞는 삶일 수도 있겠다. 하며

밑줄 친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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