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정원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정원에서 우리는 자란다

by 마음과 정원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어 온 지 5년이 됐다. 사람의 발달단계로 치면 정원 유아기를 막 보낸 셈이다. 유아기가 그렇듯, 이 시기의 정원은 뭐든 해보고 싶고 뭐든 들이고 싶었다. 남의 정원에서 그렇게 예뻐 보이던 식물을 내 정원에 덥석 들여와 아무 데나 심었다가 아뿔싸 하게 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많은 식물을 심고 또 캐내면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조금씩 내 정원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갔다. 몇 년의 시행착오를 겪고도 여전히 식물의 적절한 자리를 찾는 일은 계속된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는 것. 유아기를 지나며 조금씩 자기가 무엇인지 알아가듯, 정원도 몇 해를 겪고 나서야 어떤 식물이 어느 자리에서 잘 자라는지, 어떤 조합이 서로를 살리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정원을 가꾸다 보면 '자리 잡는다'는 말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식물도, 정원도, 어쩌면 우리 부부도 아직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정원의 사계절




그린매거진 1월호에 우리 집 이야기가 담겼다. 5년의 시간이 쌓이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꺼내놓고 싶은 사진도 많았다. 인터뷰 한 페이지가 우리 정원 이야기로 채워졌다는 것이 좋았다. 결혼 10년 차에 받은 고마운 선물이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삶을 알아서 잘 즐기는 편이다. 야구나 등산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함께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정원 일을 같이 한다. 처음에는 그랬다. 내가 혼자 흙을 파고 식물을 심고 가꾸는 동안 남편은 내 일을 도와주는 정도였다. 무거운 걸 들어주거나 땅을 파는 일을 거들었다. 그러다 어느새 혼자서 잡초를 뽑고, 잔디를 정리하고, 심고 싶은 꽃과 나무를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올해 잔디를 파내고 꽃밭을 넓히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남편이었다.


<식물적 낙관>에서 김금희 작가는 식물을 기르는 데는 키우는 사람의 성향이 작동한다고 했다. 정원에서 각자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난다. 나는 정원에서 키우고 이것저것 벌리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다듬고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 성향이 집안에선 종종 다툼이 되었지만, 정원에선 환상의 커플이 된다. 채우는 사람과 비우는 사람. 서로 다른 방향이지만, 결국 같은 정원을 만들어가고 있다.



남편은 잡초를 뽑는 시간을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으로 여긴다. 어지러운 생각을 잡초와 함께 뽑아낸다고 했다. 나는 그걸 잡초명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말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정원을 돌보다가, 어느 순간 나란히 앉아 정원을 바라보는 시간.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


그렇게 완성된 정원은 부부에게 마음을 돌보는 작은 쉼터가 됐다. 작은 씨앗이 꽃으로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들은 일상의 균형을 자연에게서 배워간다. 처음에는 정원에 관심이 없던 남편은 이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잔디를 파내고 꽃을 더 심자고 제안하며 정원을 향한 애정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특히 잡초를 뽑는 시간을 마음 챙김의 순간으로 여겨, 어지러운 생각과 함께 정리하며 한결 가벼워진다고 말한다. 부인은 그런 모습을 보고 잡초명상이라 이름 붙였다. 꽃을 심고 채우는 일을 맡는다면, 남편은 비우고 정돈하는 일을 맡아 두 사람의 손끝에서 조용히 완성되어 간다. 자연을 돌보는 일은 결국 서로를 돌보는 일과 닮아있다. -그린매거진-



시골로 이사한 이후 우리는 일상에 특별한 일을 만들지 않는다. 여행이나 기념일에 어딜 가거나 무얼 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다. 남편이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자기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이나 관계에서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고, 반복할 수 있어야 행복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지금 자기는 행복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말 절대 안 하는 경상도 무뚝뚝이인데.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에 우리는 매년 그랬듯 책에 손글씨를 담아 선물다. 낮에는 좋아하는 소박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단골 카페에 들렀다. 그리고 평소처럼 같이 마당 일을 하고, 정원을 멍하니 바라다. 저녁은 즐겨 보는 뚝딱이형 레시피로 떡볶이를 만들어 내가 좋아하는 그릇에 담고 불멍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것 없는 하루였지만 충만하다.


초봄의 정원에서 식물들을 이리저리 옮겨 심고, 자리를 잡아주며 보살피다 보니 문득 5년 전, 첫해에 심었던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식물이 자리를 잡고 자라나듯, 우리도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또렷이 알지 못한 채 지나온 그 어수선한 시간들을 지나, 식물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우리도 그렇게 조금씩 자라고 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