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책장

<식물적 낙관> <우리가 작별인사를 할 때마다>

by 마음과 정원

정원이 바쁜 계절에는 책을 읽을 틈이 없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주말이면 거의 정원에 있다. 씨앗을 파종하고, 새로운 식물을 다듬고 잡초를 뽑고 정원을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정원과 식물 책은 주로 겨울부터 봄을 기다리는 초봄에 읽힌다. 정원이 쉬는 동안에야 그제야 쌓아둔 책들을 꺼낸다.


그렇다고 가드너의 겨울이 한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년 정원 구상을 하고, 씨앗 쇼핑을 하고, 파종 준비를 한다. 올해 피었던 꽃들을 압화로 만들어 남기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정원과 관련된 일을 놓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일 년 내내 그렇다.



벽돌방 한편에 작은 책장을 마련하고, 식물과 정원 책들만 따로 모아두었다. 옆에는 내가 키운 식물로 만든 압화도 걸었다. 제법 그럴듯한 나만의 정원 책장이 완성됐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지만, 그중에서 읽고 나서 오래 곁에 두고 싶었던 식물과 정원에 관한 산문집 두 권을 소개한다.



식물적 낙관 김금희 · 문학동네

지난겨울 식물에 관한 책을 찾다가 발견했다. 지금도 곁에 두고 좋아하는 장을 들춰보며 계속 읽고 있는 책이다.

소설가의 산문집을 좋아한다. 소설 속 문장과 달리, 산문에는 작가가 자주 쓰는 표현이나 가끔 나오는 농담, 그리고 틈새에 숨어 있던 감정들이 보인다. 그래서 같은 작가의 소설보다 산문이 더 편안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소설을 읽고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산문집을 찾아보고, 그러고 나면 다음 소설이 더 잘 읽히는 경험을 몇 번 했다. 얼마 전엔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이 그랬고, 이번엔 김금희 작가의 차례였다.

이 책은 식물과 함께 마음을 돌보는 일을 기록한 글이다. 식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보다 더 조용하게 마음에 스며들었고, 식물을 가까이 두는 사람으로서 공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인상 깊었던 문장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식물을 기르는 방식에서 키우는 사람의 성향이 드러난다는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정원 배치엔 늘 자유로움이 우선이다. 형태를 맞추거나 인위적으로 손대기보다는 식물 스스로 자리를 잡아가길 기다리는 쪽이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걸,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또 이런 문장도 있다. 식물을 기르다 보면 세상의 많은 일들이 내 지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들의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생장이 계속되는 이유를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때로는 나를 왜소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려운 순간들을 받아들이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것. 때로는 모르는 채로도 삶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안다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식물은 자기 상태에 대한 미움이나 비난이 없다고. 식물을 바라보며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느슨하게 나를 놓아보려는 생각을 계속한다.

일이 고되고 마음이 지친 날이면 어둑한 밤 정원에 있는 식물들을 그저 바라본다. 어느 순간 안도가 온다. 식물은 조용히, 묵묵하게 곁에서 마음을 다독여준다.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이유가 저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받는 감정이 있다면 아마 그 안도가 아닐까.

바쁘고 복잡한 나날 속, 조용한 문장 하나로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 을유문화사

죽음을 가깝게 경험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그즈음 을유문화사의 책 소개 글을 읽었다. 태어난 삶도, 저물어 가는 삶도 모두 각각의 기적적인 순간을 갖고 있으며, 탄생과 죽음이 공평하게 존중받는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은 마거릿 렌클 작가 가족의 연대기와 자연 정원에서의 경험을 담고 있다. 어머니가 태어난 1931년부터 2018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까지, 짧은 챕터들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는 연도가 적히지 않은 페이지가 있는데, 작가가 집 정원에서 경험한 자연 이야기들이다. 가족의 연대기와 자연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흘러가는 구성이다.

책 표지와 챕터마다 실린 빌리 렌클의 일러스트도 작가의 글과 닮아 있다. 묵직하고 앤티크한 분위기로 오랜 시간이 느껴지는 그림들. 작가의 경험과 연결하며 그림을 살피는 재미도 있었다. 그냥 세워두어도 멋진 책이다.


책 초반, 어린 마거릿이 어머니의 우울증을 경험하는 장면들에서 먹먹함이 느껴졌다. 상담을 하다 보면 우울을 경험하는 분들의 힘겨움과, 그 곁에서 버티는 가족의 어려움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장면들이 흐릿하게 겹쳐졌다. 어린 마거릿이 자라서 담대하게 세상을 대하는 힘은 그 시간들로부터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는 부모, 시부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짙게 담겨 있다. 읽으면서 얼마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시아버지를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정성스럽게 병간호를 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동안 몰랐던 다정함과 애틋함을 알게 됐다. 책임이나 역할로 느껴졌던 무게가 조금 내려가고, 대신 편안함과 애틋함이 채워지는 경험이었다. 죽음은 사라지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새롭게 얻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갔다.

작가는 숲과 가까운 정원에서 살고 있어서인지 식물뿐 아니라 새와 동물 이야기도 다채롭다. 그중 토끼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정원 한편 로즈메리 덤불 아래 어미 토끼가 만들어 놓은 굴에서 아주 어린 토끼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나올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 빈 토끼굴을 발견했을 때 작가가 쓴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형언할 수 없는 한 존재를 보여 주기에 마침맞게 형성된 부재라고.

자연에 대한 글을 읽을 때 과장 없이 담백하게 쓴 글이 좋다. 직접 경험하고 오래 들여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 마거릿 렌클의 글이 그랬다. 결론 내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먼저라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나도 정원을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과 작별은 모두가 경험하거나 앞두고 있는 일이다. 자연의 순환처럼 맡겨두는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그 무게가 나아질까. 아직 막연하지만, 작가의 글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려보며 함께한 고마운 책이다.


식물 책은 결국 사람 이야기로 연결된다. 식물을 돌보는 일이 나를 돌보는 일과 닿아 있듯, 식물에 관한 글도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정원을 가꾸며, 그 사실을 계절마다 조금씩 더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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