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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09. 2024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알지 못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시작된 인연

생경한 곳으로 떠날 때면 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이 되는 상상을 한다. 셀린은 우연히 제시를 파리행 기차에서 만나게 되는데, ‘나는 어디서 만나게 될까? 비행기 옆 좌석? 아님 부산행 기차?’ 상상 회로를 돌리며 피식 웃는다.


작년 12월 낯선 유럽의 도시에서 한 여행객을 만났다. 혼자에 제법 익숙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의 유럽은 왠지 외로울 것 같아 도시가 익숙해질 때쯤 한인민박으로 숙소를 옮겼다. 외국에서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잡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직장인이 되고 난 후에는 주로 호텔이나 1인실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유럽의 가장 낭만적인 도시라는 프라하에서는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겨울이라 오후 4시면 해가 졌는데 그날은 종일 날이 흐리고 비바람까지 불었다. 오전 11시에 숙소를 나섰던 나는 오후 4시쯤 돌아왔다. 멀리 시간과 돈을 들여 떠나온 여행객에게 4시 귀가란 흔치 않지만 며칠 동안 시차적응으로 힘들었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네 명이서 하나의 룸을 쓰는 상황에서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미련 없이 숙소로 향했다. ‘얼른 씻고 누워서 책 읽어야지’ 하며 신나서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미 내 침대 옆 자리에는 파자마차림에 잘 준비를 마치신 분이 누워 계셨다. ‘응? 뭐지? 나보다 더 일찍 들어온 사람이 있다고??’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니 숙소 전체에 우리를 제외한 다른 여행객들은 없었다. 이토록 고요하고 적막한 어색함이 깃든 상황이라니.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프라하에 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 질문으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두 시간 동안 끊이지 않았다. 나이도, 사는 곳도, 이름도 모른 채 그간 각자가 켜켜이 쌓아 온 여행의 썰을 풀며 나는 아름다웠던 시드니에서의 추억을 나누고 그녀의 하와이 여행기를 경청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는 언젠가 다른 곳에서 우연히 만나도 놀랍지 않을 만큼 비슷한 취향과 결을 지녔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낯선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되새겼다.


며칠을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그녀에게 이름과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었다. 언젠가 한국에서 기회가 되면 꼭 만나자는,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진심이 담긴 말을 용기 내어 남기고 헤어졌다.


한국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인스타그램 DM으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내던 중 마침 내가 그녀의 거주 도시 가까이 갈 일이 있어 만남을 제안했다. 경기도와 경상도라는 먼 물리적인 거리가 있기에 프라하에서부터 우리 만남의 암묵적인 전제는 ‘혹시 지나갈 일이 있으면’이었다. 허나 너무도 희박했기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 보고 싶었다.


“혹시 그날 시간 어때요? 제가 근처에 갈 일이 있는데 00 씨 사는 곳에서 운전해서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미리 스케줄이 있고 교통편이 불편하면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거절해도 좋아요.”


“시간 되고 차로 30분 갈 수 있어요. 그날 봬요!”




(2024년 2월의 기록)


그렇게 프라하에서 만난 인연을 경주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 쏟아내듯 이어지는 대화 사이에 어긋나는 틈 없이 밀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멀리 있어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가끔 묻는 안부에도, 어색함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가까이 일상의 시간을 쌓아 온 이들만큼이나 마음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우연을 믿지만 인연은 노력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서로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그 마음을 아아보는 눈을 지닌 사람들. 느슨하고 부담 없이 오래 보고 싶은 친구들. 너무 멀지 않은 언젠가 홀연히 떠나 함께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보게 되는 날이 오길.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알지 못한다. 놀랍도록 신기한 건 둘 다 묻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나이를 알지만 여전히 서로 존댓말을 한다는 것, 먼 타국에서 스치듯 만난 인연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멀리서 보내는 스토리 하트에도 응원의 마음이 깃들었다는 걸 느낀다는 것,  상대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는 노력의 간극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 무엇보다 어떤 대상들에 대한 ‘필요성’의 기준이 닮았다는 점이다. 뭐, 다 제쳐두고 염화시중(拈華示衆)하는 상대와의 대화는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을 건너 따뜻한 봄 서울에서 다시 재회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멀리 있는 친구를 만날 생각에 마음도 살랑살랑 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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