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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달 천사 Nov 17. 2024

모깃소리의 위력

<토지> 속 '모깃소리'의 또 다른 의미

"자네 김개주란 자가 누군지 아나?"
"연곡사의 중 우관의 친동생이야."
"뭐라구!"
치수의 낯빛은 완연히 변해 있었다.
"똑똑하고 인물도 헌칠했던 모양인데 소문에 의하면 그자가 달고 다니는 아들놈이 관옥 같은 인물이라는 게야. 어디서 떨어졌는지 홀아비 손으로 길렀다는데."
이동진이 무심하게 하는 말이 치수 귀에 모깃소리만큼 앵앵거리는가 하면 천둥 치는 것같이 크게 울려오곤 한다. 무엇 때문에 혼란이 이는지 그 순간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치수가 서울로 올라가서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은 그 일이 있은 후이었다.
- <토지 1부 2권 167페이지 마로니에북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집필한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로 독서 토론을 하고 있는 요즘,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 속에서 많은 성찰과 깨달음을 얻어 가고 있다. 게다가 작가의 필력이 독자를 어디까지 이끌어 갈 수 있는지도 <토지>를 통해서 매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최치수는 주인공 서희의 아버지. 어머니 윤씨부인이 절에서 겁탈을 당해 이부(異父) 동생을 낳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는 어머니를 쓸쓸한 눈으로 성장 과정 내내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이부(異父) 동생이 성인이 되어 이 집의 일꾼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후 최치수의 부인과 눈이 맞아 도망을 치게 되는데 이 모든 걸 어머니가 알고서도 눈감아 준 것임을 알아차리는 장면에서 이동진의 말이 '모깃소리만큼 앵앵거린다'라고 표현됐다.


충격을 받으면 마치 한 대 얻어맞은 듯 귀가 멍해지는데, 작가님의 귓가의 '모깃소리'라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 소리는 이내 천둥소리가 되어 사람을 뒤흔들어 놓는다.


들릴 듯 말 듯 한 앵앵거리는 모깃소리.

누군가는 무시해 버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신경을 사정없이 긁어댈 만큼 거슬리긴 하다.

같은 맥락에서 최치수에게 어머니의 비밀스러운 고독함-믿고 싶지 않은- 이부(異父) 동생의 존재는 알듯 말 듯 맞춰지지 않은 작은 퍼즐 조각이었고, 이동진의 무심한 한 마디가 사건의 결정적 조각이 되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작지만 큰 위력을 나타내는 모깃소리.

여름밤 숨어든 모기 마리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것처럼 누군가 시간을 어삼킬 만큼 혼돈을 야기시키는 모깃소리. 미물의 작은 날개짓이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고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시발점이 된다.


평범한듯 하나 짧은 표현 하나로 독자에게 사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주는 글 덕분에 책을 깊이 있게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 이런 게 필력이구나를 실감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면서,

내 일상에서 나타나는 미미한듯 하나 핵심적 시그널은 어떤 게 있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등장인물의 고뇌와 갈등으로 뒤엉킨 내적 혼돈을 귓가 모깃소리로  나타내고 있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

앞으로 전개될  그네들의 삶이 부디 더 큰 폭풍으로 휘몰아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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