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헝클어 버리고 지나가는 지리산 끝자락의 산골 바람은 '곧 겨울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으슬으슬당장이라도 눈 구름을 몰고 올 듯한 하늘 아래 이곳은 노동하는 삶, 공동체의 삶을 추구하고 비폭력, 사랑과 자발성 교육을 교육목표로 하는 30여 년 전통의 국내 첫 대안학교 간디고등학교다.(현재 학력 인정, 대안교육 특성화교)
전국 각지에서 모인 90여 명의 학생들과 20여 명 가까운 교직원이 하루 세끼를 같이 먹으며 치열하게 사고(思考)하고 터전을 일구어 나가면서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몸소 느끼고 배우는 곳, 내 아이가 24시간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초 봄, 학교 입구 전경
한여름 농사에 여념없는 아이들
톱과 망치, 대패와 사포로 재단하고 가공하여 그들이 있는 공간을 가치 있게 생성하는 목공업도 거뜬히 해내고,
삽과 쇠스랑으로 두둑과 고랑을 만들어 씨앗과 모종을 심어 경작하는 아이들.
자신들의 먹거리를 재배하면서 노동의 숭고함은 물론 땀과 흙, 지구의 소중함도 체득하는 곳이 간디고등학교다.
비건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기후 변화에 대한 민감성을 길러서 의식 있고 실천하는 깨어 있는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아이들. 3년 뒤 받을 수능 점수를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속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답을 찾는 하루를 보내는 이곳 아이들을 보면서 어떤 날은 그냥 대충 흘려보내고 마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1년 농작물을 수확합니다.
11월, 전국의 고3이 지난 12년간의 결과를 평가받는 달이라면, 이곳 간디고등학교에선 학생들이 1년 동안 재배한 농작물이 결실을 맺고 수확되는 달이다.
결과에 대한 평가라면 평가가 이루어지는 달.
수능고사장과 흙갈색의 땅 위에서 지난 시간에 대한 그간의 노력이 결과로 드러난다.
누군가에겐 아라비아 숫자로, 누군가에겐 귀한 작물로 매겨지는 11월의 성적표는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관점을 시사한다.
어쨌든 아이들의 땀과 노동을 생각하면 보태준 것 없이 이랑에서 손만 내미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알이 꽉 찬 배추와 어른 팔뚝 두 개보다 굵은 무처럼, 단단하고 야문 아이들의 거침없는 수확 행사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동참만 해도 그들은 뿌듯해한다. 순위나 능력과 상관없는 결과물(작물)은 마치 자신들이 존재로 인정받는 것과 같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