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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May 28. 2020

2020년의 엄마 아빠

기분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날 나는 결국 괜찮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핸드폰 알림 설정을 아예 꺼버렸다. 그냥 죽은 듯이 살고 싶어서. 도피라면 도피였다. 하지만 도피가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법. 이번에도 그랬다.


그렇게 1주일을 보내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술에 취한 아빠의 문자에도 적당히 짜증내고, 적당히 맞장구 치며, 적당히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랑도 얘기를 잠깐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엄마는 말했다. ‘아빠가 일 쉬는 날 술 마시는 건 그냥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엄마가 술이라면 진절머리를 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술 마시는 아빠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온갖 증오를 쏟아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빠의 음주가 나에게 스트레스였던 건, 그게 아빠의 불행뿐만 아니라 엄마의 불행과도 연결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다가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왕래를 거의 끊고 살았던 큰형(아빠는 2남 2녀 중 막내다.)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는데 얼마 전 위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시라고. 예전에 자기가 지은 죄가 많아서 (당연히 돈 얘기) 연락 드릴 생각도 못했는데 연락 드리길 잘한 것 같다고. 술냄새 풀풀 나는 문자를 보며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잘했어. 큰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셨겠네.” 이어서 아빠는 말했다. “수입이 없어서 좀 힘들어하시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매달 50만원씩 보내드리려고 한다.” 뭐라고 답하는 게 좋을까 생각하는 동안 다음 문자가 왔다. “일 그만 두려고 했는데 이제 코 꿰였다. 짤릴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평소의 나였다면 아빠의 저런 표현에서 불행과 체념과 비관을 읽어냈을 것이다. 그걸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그럼 50만원씩 더 보내줄게.”라고 말했겠지. 하지만 저 말에 담긴 게 정말 불행과 체념과 비관일까? 그래서 나는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짜증나?”

 

이렇게 물어보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상대의 기분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안전거리가 확보되는 걸까. 아빠의 기분은 아빠의 것. 나는 그 기분 바깥에 있는 사람. 옆에서 묻고, 공감할 수는 있어도, 아빠의 기분을 지레 짐작해서 대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내 질문에 아빠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 오히려 동기 부여가 되고 더 좋지. 열심히 해야지.”


- 이런 상황에서 아빠는 분명 이런 감정을 느낄 거야, 

- 이런 상황에서 엄마는 분명 이런 생각을 할 거야, 


힘들었던 시기에 내 마음에 생긴 흉터 같은 공식이 그들의 진짜 모습을 가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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