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글레 Jun 03. 2020

그런데 왜 아직도

아이는 고개를 갸웃대며 이렇게 말했다.


1. 우리 사이의 간격


엄마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왜 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아직도 그러는 거냐고. 그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은 잠자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슬픔과 원망이 발작처럼 지나간 뒤에야 생각이라는 게 가능해졌다.


엄마는 다 지나간 일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아직 지나간 일이 아니다. 나는 과거에 붙들려 있다. 나는과거를 붙들고 있다. 놓아야지, 한다고 해서 놓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병인 거겠지. 그게 잘 안 되니까 약을 먹고, 그게 잘 안 되니까 치료를 받는 거겠지. 엄마도 속상해서 하는 말일 테지만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은 나에게 꽤나 타격이 크다. 내가 왜 힘든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없어 보이는 말이라서.


비슷한 맥락에서 엄마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예전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면 받아들일 텐데, 진지하게 하니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그치만 내 안에서 완결되지 않은 사건인데 어떻게 과거형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겠어. 엄마가 저런 마음인 걸 아니까 지금 이 순간의 힘든 마음에 대해 엄마에게 이야기 할 수 없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아니까,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노라 거짓말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엄마는 내가 아픈 걸 아직도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치만 그걸 탓하고 싶지는 않다.




2. 일교차 같은 사람


나는 갑작스런 온도차에 취약하다. 갑자기 추워지면 재채기를 하고 눈물을 흘린다. 온도차에 의한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이다. 엄마는 낮과 밤의 일교차 같은 사람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어느 것 하나 악하지 않지만, 나는 그 앞에서 재채기를 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피했다.


아주 예전에는 그런 내가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일교차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 일교차가 걱정할 것이 염려되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 나는 일교차도 없는 한여름 땡볕 아래 주저 앉아 갑작스런 재채기를 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고장난 걸 알았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나는 왜 죄인처럼 그랬던 걸까? 아무것도 모르고 눈치만 보던 나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 어린 아이를 충분히 보호해주지 않았던 부모에게 원망을 느꼈다. 연민과 원망을 충분히 느끼고 난 이후에야 겨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둘 다 잘못한 건 없어.




3. 과거는 그렇다 치고


엄마에게 칭찬 한 번 받으려고 온갖 집안일을 다 해놓던 어린 나를 생각하면, 오늘은 엄마가 어떤 얼굴로 들어올까 조바심 내며 숙제를 하던 어린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안 좋다. 그들의 불행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네 능력 밖의 일이라고,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 곳을 떠날 수 있으니까 그 때까지만 참으라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주다 까무룩 잠이 든 나에게 어린 내가 찾아온다.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들려주신 모든 이야기를 돌려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는 내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되풀이하며 나에게 되돌려준다. “저들의 불행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저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당신 능력 밖의 일이에요.” 거기까지 말한 아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머뭇댄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대며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 곳을 떠나지 못한 거예요?”


나는 그 작은 아이를 끌어 안고 한참을 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짜기를 바라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