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먼 길을 달려 우리 앞에 선 별

by 은예진

양손에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기는 했지만 막상 우혁의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친구 세진이 일하는 카페 마루로 갔다. 영업이 거의 끝나가는 카페에는 손님이 없어서 세진은 혼자 턱을 고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땡그랑거리는 종소리에 벌떡 일어선 세진이 양손에 하나씩 캐리어를 잡고 있는 서아를 보더니 팔을 벌려 그녀를 껴안았다.


“잘 왔어. 서아야!”

“뭔 줄 알고 이렇게 격한 환영이야?”


서아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세진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너 뺨이 빨갛게 부풀어 있고 머리가 엉망이야. 그야말로 새엄마한테 맞고 쫓겨난 신데렐라 꼬락서니야. 잘 왔어. 이 밤에 네가 올 곳이 여기라서 다행이다.”


순간 서아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입술에 힘을 꽉 주고 숨을 삼켰다.


“고, 고마워.”

“캐머마일 차 줄게 앉아.”


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세진은 캐머마일 차 두 잔을 만들어 자리에 앉으며 서아의 뺨에 손을 댔다.


“도대체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손자국이 이렇게 난 거야.”

“괜찮아. 아픈 줄도 몰랐어.”


“어휴, 진작 나왔어야 하는 건데. 그동안 돈 벌어다 주고 밥 해먹인 거 생각하면 내 속이 다 터진다.”


세진이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씨근덕거렸다. 서아는 고개를 돌려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까만 유리창에 비친 흐트러진 머리와 붉게 부풀어 오른뺨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나마 이 꼴로 우혁을 찾아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서아가 테이블에 팔을 대고 엎드리며 말했다.


“그래, 지금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자자. 그냥 자고 내일 생각하자.”

“고마워 세진야. 나 오늘 하루만 여기서 재워줘.”

“야, 오늘 하루는 무슨 오늘 하루야. 네가 잘 수만 있으면 여기서 얼마든지 있어도 돼.”


말이 그렇지 세진이 지내는 카페 안쪽 창고 방은 도저히 두 사람이 누워 잘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카페에서 쓰는 일회용 컵과 빨대, 냅킨 등의 박스가 꽉 찬 방 안에는 세진 혼자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그 방이 답답해서 여기 카페 바닥에서 자는 날이 더 많으니까 네가 방에서 자.”


세진이 서아를 방 안에 재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다 보였다. 서아는 고개를 흔들고 세진이 편 돗자리 위에 앉았다.


“싫어. 나도 여기서 잘래. 너랑 같이 자지 뭐.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어이구. 그래 우리 오늘은 여기서 같이 자자.”


상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온 서아가 돗자리에 깔아 놓은 담요 위에 엎드렸다. 토끼와 강아지 모양의 헤어밴드를 한 서아와 세진은 그렇게 나란히 엎드려 셀카를 찍으며 키득거렸다.


“이것도 나름 재미있는데. 야, 우리 꼭 파자마 파티하는 것 같다.”


세진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내려놓았던 블라인드를 올렸다.


“서아야, 저기 좀 봐. 저기 남쪽 하늘에 반짝거리는 별 보이지?”


서아가 허리를 곧추세우며 세진의 손끝을 따라갔다.


“저 반짝이는 별이 목성이다. 밤에 여기서 보면 여름에는 목성이 보이고 겨울에는 붉은 화성이 보여.”

“밤에 별을 자주 봤어?”


세진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 끝나고 이렇게 혼자 자려면 가끔 너무 쓸쓸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어.”

“그럴 때는 전화를 하지.”


“하루 열두 시간씩 마카롱 꼬끄를 만드느라 팔이 떨어져 나가게 일하는 너를 잠 못 자게 만들라고? 어휴, 그냥 내가 쓸쓸하고 말지.”


“앞으로는 그럴 때 전화해. 너 혼자만 별을 보지 말고 같이 보자.”


세진은 서아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목성 옆으로 줄을 그어 흐릿하게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저 별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나는 별인데 이백팔십 광년 떨어져 있대.”

“이백팔십 광년?”


서아가 턱을 고이고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페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뒤로 반짝이는 목성과 그 목성 옆에서 주황빛으로 빛나는 별이 점점 더 또렷하게 보였다.


“참 멀지?”


세진이 고개를 돌려 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별은 그렇게 먼 길을 달려서 우리 앞에 섰구나.


그 순간 왜 강우혁이 생각난 걸까? 서아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한번 떠오른 우혁은 좀처럼 뇌리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솔직히 멋있는 건 멋있는 거다. 현실감이라고는 일도 없는 얼굴에 커다란 키, 움직임조차 우아한 별 같은 남자다.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 옆에 있으면 화상을 입겠지?”

“뭐라고?”


세진이 어이가 없는지 귀를 가까이 대며 되물었다.


“아니야.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내가 하늘 보는 재미에 별자리 앱을 깔아서 자주 봤거든. 태양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수성의 평균 기온은 백칠십구 도지만 최고 온도는 사백이십칠 도까지 올라가. 한마디로 타 죽는다 이거지.”


“그렇구나. 타 죽겠구나.”


무조건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고시원 얻을 보증금 오백만 원도 없는 처지다. 오백만 원을 모을 때까지 이렇게 카페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자거나 아니면 강우혁이 시키는 대로 그의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서아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보증금 만들 때까지는 좀 참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진이 그런 서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한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봐. 지금 집을 나왔어도 갈 곳이 있다. 내일 출근할 회사가 있다. 길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 굿!”


서아가 키득거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이 말이 맞다. 그녀가 길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되게 해준 세진이 있어서 굿! 당장 전화만 하면 장 대표를 보내 주겠다는 강우혁이 있어서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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