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을 먹었다.
10년도 훨씬 지났지만, 중국 여행하면서 중국 향신료에 학을 떼고 나서, 다시는 그 근처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였다. 마라탕이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도 꿋꿋하게 버텼다. 남들이 아무리 맛있다고, 한 번 먹고 나면 계속 생각나는 맛이라고 난리부르스를 칠 적에도 모두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그런 내가 내 발로 걸어 마라집에 걸어가는 날이 오다니!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불현듯 마라탕 한 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동안 ‘마라탕 그거 다 한 때 유행’이라고 너스레를 떨던 것이 민망했다. 마침 마라탕을 먹고 온 후배가 쌍엄지척을 날리는 것을 받아 자연스럽게 점심 약속을 잡았다. 나처럼 한 번도 마라를 접하지 못한 동료들을 꼬드겨 함께 움직였다. 모두 처음이라면 뭔가 하수처럼 보여도 같이 묻어갈 수 있으리라는 꼼수를 숨긴 채 호기롭게 마라입문자들 선봉에 서서 마라집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내내 중국에서 식당에 들어서면 푹하고 풍기던 향신료 냄새가 떠올랐다. 아직 입으로 음식이 닿지도 않았는데 코로 이미 먹은 것 같은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음식이 나오면 속이 계속 울렁거렸었다. 익숙하지 않은 재료들을 씹을 때마다 어색했던 식감들, 뱉고 싶지만 뱉을 곳이 없어서 꿀꺽 삼킬 때 목구멍에 한 번씩 걸렸던 그 부석거림. 그 감각들을 나는 무척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 길, 그 낯선 감각들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알 것 같지만, 진짜는 아직 모르는, 미지의 것을 상상하면 드는 설렘 같은 것이 마음에 피어올랐다. 막상 먹었는데 이건 완전 내 취향이면 어쩌지?
식당 문을 열고 숨을 들이마셨다. 상상했던 향신료 향은 나지 않았다. 식당 추천 마라홍탕 1단계를 주문했다. 쌍따봉을 던진 후배의 조언에 따라 ‘마라탕엔 꿔바로우’를 시전하며 함께 시켰다. 막상 꿔바로우가 나오고 보니, 찹쌀탕수육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음~이런 맛이구나. 근데 너무 아는 맛이다. 하하.’ 같이 간 마라입문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웃었다. 짬뽕 같은 짬뽕 아닌 마라탕이 나왔을 때, 이 붉은 국물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익숙하지만 약간은 낯선 맛. 1단계를 먹으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이국에서 맡았던 향과는 거리가 먼 한국식 마라 맛은 예상보다 먹을 만했다. 먹기 전 수많은 상상과 이물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처음 먹어보는 포두부와 푸주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적어도 한국 마라식당에서 파는 마라탕맛은 아는 자가 되었다.
모르는 맛에서 아는 맛으로, 마라탕을 먹기 전과 먹고 난 후에 뭔가 변했냐면 그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한국 프렌차이즈 마라탕집 마라탕 1단계는 먹어 봤고, 이제 그것을 다시 찾을 만큼 취향은 아니었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포두부와 푸주의 생김새와 식감을 알게 되었고, 옥수수면은 맛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통 마라맛을 본 사람과는 대적할 수 없지만, 이제 쌍따봉을 날리던 후배에게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정도를 얻었달까?
마라의 참맛을 각오하고 간 것에 비해 너무 미천한 경험을 한 것이지만, 어떠한가. 포두부와 푸주를 알았고, 프렌차이즈는 놀랍도록 익숙하고 친화적인 맛을 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는 역겨워 힘들었던 중국 어느 식당의 향신료의 향이 먼 기억 속에서 잠시 재생되었고 이제 설렘의 기억으로 재정비되었다. 그것을 됐다. 마라탕 입문 미션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