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요리 좀 합니다. 후후. 20분 내로 할 수 있는 요리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조리 방법은 단순하고, 재료는 최대한 채소를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요즘 장 보러 가면 가지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사실 가지를 먹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한 5~6년 되었을까요? 어렸을 때 먹어보지 못한 건지, 먹지 않은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지 하면 먼저 흐물흐물한 식감이 떠오르고, 그 보라색- 왠지 굉장히 질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간혹 가지튀김을 먹어보긴 했는데, 씹자마자 나오는 뜨거운 물 때문에 입천장을 데어서 맛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다른 메뉴가 있는데 가지를 고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가지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기보다, 나와는 거리가 먼 식재료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댁에서 가지를 마주했을 때, 생가지를 툭 잘라 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어 주시는 어머님의 손길을 정색하며 뿌리칠 수는 없었습니다. 익힌 가지도 아니고, 생가지를 먹다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입으로 들어오는 가지를 씹어 먹었습니다.
밭에서 막 따온 가지는 청사과향이 났습니다.(주관적인 느낌입니다만.) 오히려 맛이 강한 고추장이 가지향을 음미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뻑뻑할 것 같았던 가지가 부드럽게 씹히면서 입 안이 시원해졌습니다. 오~! 이런 게 어른의 맛이랄까요? 슴슴한 맛, 그렇지만 재료 본연이 가지고 있는 향과 식감을 오롯이 혀로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고 나니, 어머님이 밭에서 막 따온 가지를 드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가지에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기본양념으로만 무친 가지나물, 계란옷을 입힌 가지전, 흰쌀밥과 어우러진 가지밥. 먹으면 먹을수록 더더욱 좋아지는 가지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제가 직접 가지를 요리할 생각은 못하였습니다. 가지요리는 여름에 어머님이 만들어 주는 한정판 음식이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에 만족했습니다. 가지 요리는 왠지 넘사벽 요리라서 제가 함부로 넘 볼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지요리를 1년에 몇 번 못 먹었습니다. 사실 외식하러 나가도 가지 요리를 하는 음식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에게 가지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조를만한 애교가 저에게는 부족했습니다. 그저 여름에 시댁을 가게 되면, 밭에 매달려 있는 가지를 어머님이 바구니에 담아 오시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님에게 말은 못 하고, 마음으로 텔레파시를 무진장하게 쏘아 댔습니다. 제발, 가지요리 해주세요. 제발요. 아이들은 안 먹지만, 어머님, 저는 엄청나게 좋아해요. 어머님이 물에 싹 씻어서 고추장에 찍어서 제 입에 넣어주시던 그 순간부터요. 아님, 예전처럼 생가지 무심히 툭 잘라서 입에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최근 요리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면서, 그리고 가지가 많이 나는 계절이 되면서 가지요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거듭된 고민 끝에 가지 3개를 샀습니다. 유튜브 검색 끝에 가지 스테이크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족들이 먹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재료로 나를 위해 요리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지를 굽고, 양념을 부어 조리는데 한 10분? 정도면 끝나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는지. 생각해 보니, 나 먹겠다고 시간을 들여서 요리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들 위주로 했습니다. 정말 먹고 싶어도, 나 하나 먹겠다고 뭔가를 산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거든요. 일단은 다수가 많이 먹는 거 위주로 사는 게 합리적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한 적 없는데 말이죠.
가지 요리 맛은 어땠을까요? 남편은 반신반의하며 먹어 보더니, 생각보다 맛이 있다는 평을 했으며, 첫째 아이는 의외로 맛있다고 했고, 둘째 아이는 아예 먹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와 ‘의외로’에 약간의 으쓱해졌고요. 제 입에 무척 맛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자존감이 훅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가지전 정도는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가지를 요리하고 나니, 좋아했지만 요리하는 데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식재료들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음엔, 바질. 너 기다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