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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Aug 11. 2023

17. 집오리의 희망사항

오리는 날 수 없다, 엄마에게 혼났죠

이제는 하늘로 날아갈래요

하늘 위 떠 있는 멋진 달 되고 싶어

-체리필터, 오리날다 노래 가사 중


아침요가를 마치고 누워서 유튜브 음악 랜덤 재생으로 노래를 듣는데, 체리필터의 ‘오리날다’가 흘러나왔다. ‘소싯적에 이 노래 좀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지’ 하면서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예전에는 리듬이 신나서 흥겹기만 했는데, 이어폰으로 듣고 있어선지 가사가 귀에 콕콕 박혔다. 헉, 마음이 이상했다. 왜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지. 왜?

울먹울먹 하며 매트에서 일어나는데,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던 배우자님이 눈물 글썽거리는 나를 보고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 듣다가 오리는 날 수 없다고 엄마가 혼냈다고 근데 오리는 밤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고 했더니, 황당한 얼굴로 어이없어했다.


“오리 철새야~.” 눈물이 쏙 들어갔다.


오리는 철 따라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철새이지만 집오리는 잘 날지 못한다.


네이버 나무위키에 한 번 더 확인했다. 띠로리. 노래에 나오는 오리는 집오리였다. 알고 나니까 다시 또 코끝이 더 찡했다. 심지어 오리는 철새인데, 집오리라서 날 수가 없다고 엄마한테 구박받은 거야? 싶었다. 아마도 우리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자기랑 비슷하게 생긴 오리들이 날아가는 걸 봤겠지. 그래서 그날 밤 꿈까지 꾸게 된 거야. 자다 깨서 날개를 퍼덕거리다가 엄마가 보고 짜증 내면서 혼냈을 거고. 오리는 날 수 없다니까. 헛꿈 꾸지 마라.


오리 마음도 엄마 마음도 다 이해가 되었다. 가능, 불가능을 판단하지 않고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마음과 현실적인 문제를 깨닫고 멈추는 마음. 예전에는 늘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꿈과 희망 쪽에 무게가 실렸는데, 점점 현실적인 한계를 수긍하는 마음에 무게가 많이 옮겨갔다. 지금은 어느 쪽도 치우침 없이 평행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은 집오리가 밤하늘을 날아 멋진 달이 되기를 응원하고 싶은 쪽으로 삶의 추를 옮기고 싶다. 처음부터 철새였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 때문에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게 슬프다. 그런 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많이 보이는 것도.

그러니까 이제는 응원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가끔 남들 안 보이는데서 날갯짓 정도는 해볼 테다.


“애는 집오리라서 그래. 집오리가 날겠다고 그러는데, 멋진 달 되고 싶다는데, 응원해야 돼? 말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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