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은 뭐, 카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지. 6살, 11살, 41살! 렛츠고!
사실 걱정과 우려가 없진 않았다. 숙소 예약을 마치고 한껏 들뜬 나에게 한 선배가 물었다.
“ 애들 둘 데리고, 엄마 혼자서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얼마나 돌아다닐 수 있겠어?”
이미 둘째 아이의 교통카드를 만들고 오만 원이나 빵빵하게 충전한 뒤였다. ‘일본에서도 교통카드로 여기저기 다 잘 돌아다녔는데요. 여기서도 열심히 대중교통 타고 서울도 가고 못 가는데 없이 다 다니는데요. 부산은 뭐가 다른가요?’ 라며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훈수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 수동공격이 최고 아닌가? 유감을 담은 표정을 날리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무엇보다 이번 부산 여행에 우리 셋은 각자의 목표가 있었다. 6살에게는 국제시장 문구 코너에서 사야 할 산리오 캐릭터 굿즈가 있었고, 11살은 부산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어야 했다. 41살은 새로 개장한 부산 워터파크 인피니트 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부산 현대 미술관과 서점 방문을 계획했다. 43세 아버님은 뭐, 자유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기쁘지 않겠는가.
비가 억수로 내리는 일요일 오전, 동탄 srt역에 도착했다. 우리 셋을 역 앞에 내려주고 떠나는 아버님의 차는 뒷범퍼마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야, 빨래 돌리기, 청소기 밀기, 바닥 닦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는 잊으면 안 돼~.
부산역에서 내리자마자, 도시철도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는 나를 붙잡으며 도시철도가 지하철이 아니라는 11세를 설득하는데 잠시 시간을 지체하였다. 일단 ‘나를 따르라’를 시전 하며 억지로 끌고 내려가 지하철 대합실을 확인시켰다. 머쓱해진 11살은 잠시 의기소침해졌으나, 갈매기 소리가 나는 안내방송에 금방 기분이 회복됐다. 2박 3일 내내 자리의 신이 강림하여 한 번도 서서 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은 중에도 막 지하철에 올라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매의 눈으로 보고 있는 분이 있었고, 자신의 옆자리 사람이 일어나자마자 재빨리 빈자리를 가리키며 즉시 아이들을 앉게 했다. 뒤이어 다른 자리가 생기자마자 자신이 자리를 옮기며 나를 앉게 하셨다. 부산이여~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입니다!
이번 부산 여행의 대부분은 해운대에서 보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5분 거리에 숙소가 있었고, 숙소에서 워터파크가 5분 거리였고, 워터파크에서 해변열차까지 10분 거리였다. 해변열차에서 밀면 식당까지 5분 거리, 식당에서 루프탑 카페까지 3분 거리, 루프탑 카페에서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5분 거리, 해수욕장에서 노천펍은 3분 거리, 펍에서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2분 거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숙소까지 1분 거리. 가장 멀었던 요트 경기장은 숙소에서 택시로 10분 거리. 돌아오는 길은 버스로 6 정거장. 항상 마무리는 맥주와 밀키스와 젤리로 하여 셋 모두 행복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부산역에 다시 가서 캐리어를 맡기고, 11살은 인생국밥을 만났고, 6살은 산리오 굿즈를 비닐봉지에 가득 담을 수 있었다. 비록 41세의 고집으로 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카페로 이동하던 중에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만나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모두 젖는 사태를 맞이했지만, 그것쯤은 상냥한 택시 운전사 분 덕분에 말끔히 해결될 수 있었다.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콜을 잡으시고, 쇼핑몰 있는 지하철 역 바로 앞에서 내려주시는 센스라니. 난 정말 반했잖아요. 부산.
지하철역에 오면 자기 지갑에서 교통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척척 대고 개찰구를 통과하는 6세와 다리 아프다고 투정 부리는 동생의 어깨를 다독이며 조금만 더 걸으면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살 수 있다고 알려주는 11세, 이제는 검색의 달인이 된 41세.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 3인은 최적의 여행 메이트라는 점을 깨달았다. 각자가 해 보고 싶은 것을 공유하고, 나누고, 인정하고, 협조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가지 못 갈 곳은 없다. 카드한도와 은행잔고만 허락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