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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Aug 14. 2023

18. 리추얼 부자

방전되기 전에 미리미리 충전하기.

(리추얼(Ritual):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 의례)


일어난다. 노트를 편다. 의식의 흐름대로 노트에 뭐라도 쓴다. 화장실을 간다. 책을 읽는다. 세수를 한다. 핸드폰을 셀카봉에 세팅한 후 무선이어폰을 낀다. 줌 연결 후 요가를 한다. 10분간 음악을 듣는다. 채소를 먹는다. 씻는다. 아이들을 깨운다. 회사를 간다.      


요즘 매일 아침 하는 리추얼이다. ‘노트를 편다’는 최근에 들어가긴 했다. 주요 루틴은 요가에 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운동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이어나가고 있다. 일요일은 줌요가가 쉬기 때문에 호수공원을 돈다. 알람은 매일 4시부터 5분 단위로 울린다.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으로부터 시작됐다. 운동을 넣은 것은 요가가 최근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을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좀 덜 하는 것 같다. 나는 그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싫어하는데, 나는 피곤한지 잘 모르겠는데 그 말을 듣고 나면 어디가 아픈 것 같고 진짜 피곤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생각 없이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꼭 할 말이 마땅치 않을 때 이런 말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긴 한다.      


기상 시간이 루틴이 되면 쉬울 것 같았는데, 매일 사투를 벌인다. 10분만, 1분만 더 누워 있고 싶다는 욕망은 좀 체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그렇게 일어날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만 쉬면 안 될까. 오늘만 늦게 일어나면 안 될까. 가끔 생각에 지는 날도 있다. 그러면 하루 종일 일정이 꼬인 것 같고, 기분이 좋지 않다. 내 MBTI에 P가 강한데, 루틴이 어긋나면 왜 기분이 안 좋을까. 최근에 이유를 좀 알 것 같았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 루틴이 어긋난 것보다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것 때문에 속상함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꼭 그 시간이 아니라도 노트에 뭐라도 썼거나, 책을 조금이라도 읽었거나, 요가를 낮에라도 했거나, 호수공원이라도 잠깐 걷고 나면 또 그렇게까지 속상하지 않다. 그런데 새벽 시간을 놓치면 이 일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재조율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아침에 못한 독서와 글쓰기를 회사에서 하고 싶어서 업무에 집중을 제대로 못하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줄여서 빼야 하고, 해야 할 집안일을 미루거나 배우자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모든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 새벽에 일어나면 말끔해지니까, 알람을 촘촘히 맞추는 것이다.

     

가끔씩은 리추얼을 다 놓는 날을 만들기도 한다. 한 번 제대로 방전되는 바람에, 기본 에너지 장착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안다. 주말 하루 정도 늦잠이나 낮잠을 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심지어 핸드폰을 놓고!) 멍 때리며 젤리를 먹는다. 맥주도 마시고, 만화책을 본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제대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전히 내일 아침 알람을 끄면서 고뇌하겠지만, 세수 한 번 하고 나면 말끔해지는 것도 알고 있다. 새벽에 얼음 가득 시원한 아메리카노 마시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 사각사각 만년필 소리도, 뜻밖에 문장을 만나는 즐거움.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이매진 드래곤스의 ‘Believer’을 들을 때 그 두근거림이란. 당근의 달큼함과 땀으로 끈적해진 몸을 씻어주는 물줄기. 비상시에 쓸 수 있게 에너지 잘 충전해야지.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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