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병렬 독서.....
2025.1.1~1.8 독서기록
“아일랜드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빛”(뉴욕저널오브북스)이라고 평가받는 작가. 개인적으로 아일랜드 작가하면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윌리엄 트레버, 그리고 최근에는 클레이 키건. 아일랜드 작가 소설을 읽다 보면 뭔지 모를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 않지만, 내 언어로는 분명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렇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불안 혹은 불투명한 불화들. 그 도시에서 혹은 그 국가에서 끊임없이 불화하고 고민하는 개인 혹은 공동체. 내가 읽은 작가들 책만 그럴수도. 아일랜드에도 밝고 희망적인 필굿 소설들이 있을까? 있겠지. 폴 핀치의 예언자의 노래를 시작하고 몇 번이나 책을 열었다 닫았다.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무섭고 두렵고 도망치기도 싶고 외면하고 싶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 나방이 몸을 부딪치는 어렴풋한 소리.
불법구금, 헌법에 따른 권리 행사, 반란, 보안 및 신원조회.
현재를 존재하게 만든 이름없는 사람들.
강물이 불어났다. 거센 물결, 흰색 스카프.
슬픔 위에 슬픔이, 또 슬픔이 쌓인다.
굴복, 자유, 싸우는 것.
이것은 소설이다. 아일랜드는 현재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내가 읽고 있는 그 글자들은 허구다. 그런데 나는 두렵다. 소설 속 주인공 아일리시가 뉴스를 틀고 음소거하는 장면에서 나는 책을 처음 덮었다. 허구가 아닌 것만 같아서. 왜 제목이 예언자의 노래인가. 이 작가는 2024년, 2025년 한국 사회를 떠올리며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텐데. 이것은 정말 소설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소설로만 읽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지막장까지 160장이 남았다. 다 읽을 수 있을까. 작가는 내가 바라는 대로 마지막 문장을 썼을까. 160장을 건너 뛰고 마지막 문장을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을까 봐, 혹은 그렇게 써 있어서 믿지 못하게 될까봐.
2024년 초에 읽다가 마지막 30페이지를 다 읽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남겨 놓은 책.
새 마음으로 다시 읽기 시작.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은 문장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책.
폭력과 달리 사랑은 인내를 전제로 한다.
내적 노력을 무엇보다 용기를 주제로 한다.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실망을 참고 견딜 용기,
일이 잘못되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 사람은 자신의 강인함만 믿으면 되기 때문에 그 힘의 왜곡된 형태인
폭력을 믿을 필요가 없다.
<읽을, 거리>
1/2 p16 우리가 내버리는 재활용 쓰레기 중 다 쓴 물건이 태반일까 안 쓴 물건이 거반일까
1/3 개그우먼 박지선 인터뷰
심비디움: 화려하고 색깔이 다양한 꽃을 피우는 강인한 난과 식물
박지선: <벗을 잃고 나는 쓰네> 책, 진짜배기 애도과정
제가 본 한 구절이 기가 막히게 좋으면 그 책이 무지 의미가 있다고 여겨요. 한 문장만 마음에 와 닿아도 그건 제겐 좋은 책이에요
1/4 김화영 인터뷰
한때나마 내가 시인이었다는 건 훈장이 아냐. 그건 오히려 어떤 태도야. 나는 언제 든지 자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태도가 시라고 생각해. 여러가지 각도에서 언어에 대해, 언어와 삶의 관 계에 대해, 매 순간 천착하는 거, 그 태도가 나는 시라고 봐. 바로 그런 시적인 태도가 가장 문학적인 태도라고.
1/5 일기
잘했구나,가 아닌 애썼구나, 하는 짠함의 소금기.
1/6 에세이
체리 세알 땅콩 두 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걸 거다
1/7 시 어느 때 여는 곳 종치는 여자들 있어-경이
그곳 역시 출구가 아님을
그것 역시 출구가 됨을
떪으로 가리키는 바람
풍경도 누군가 치니까 절로 뱉는 게
노래라면
치니까
치대니까
싫ㅋ
<정끝별 시인-시쓰기 딱 좋은 날>
1/5 에세이
내게 사랑은 늘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살고 싶은, 도망의 다른 이름이다. 혹은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망명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그걸 시라고 부른다.
: 예언자의 노래를 읽다가,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이상한 한기나 마음의 불안이 일어나면 시의 적절 시리즈 1월편을 번갈아 읽다.
카리스말(kas-limaal) : 서로 빚지는 것, 서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채식은 언제나 큰 화두이면서 물음표였다. 뭔가 도발적인 느낌이고, 그믐 플랫폼에서 장맥주님이 책모임 여셨길래 천천히 따라가 볼 예정이라 1/8일 머리말만 30페이지(전자책 기준) 읽었는데, 마음이 복잡해지는 책이다.
왜, 육식은 안되고 채식은 되는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이 책도 다 읽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거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것보다 다 읽을 수 있을까?
음, 올해 오프라인, 온라인 독서모임을 거의 다 정리했다. 대신 2025 가장 큰 목표로 그믐 플랫폼에 팟캐스트 책걸상 진행자 yg의 벽돌책 깨기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일단 전자책으로 4만원을 넘게 주고 샀다. (전자책으로 2052페이지였다.) 지금은 아주 천천히 1장을 읽고 있는데, 그믐에 아직 인증은 못했다. 어렵고 어렵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은 호기심이 들기도 하고, 이해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한 유전자, 한 호르몬, 한 유년기 트라우마로 인해 벌어졌다고 결론 짓기는 불가능하다. 한 종류의 설명을 입에 올리는 순간, 사실상 다른 설명들도 끌어들이는 셈이기 때문이다. 구획은 없다. 어떤 행동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혹은 ‘유전적’ 혹은 ‘발달생물학적’ 설명이라는 말은 수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순전히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당분간 특정 시각에서 접근하겠다는 말의 축약일 따름이다.”
“모든 종은 저마다 독특하지만, 인간은 가끔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