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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브라운 Sep 27. 2017

'갑'일수록 '을'처럼 행동하라

그래야 얻는 게 더 많다

[사진 출처: Netflix 미드 'House of Cards']





Question


재무팀 직원입니다. 저희 팀 주요 업무가 예산 관리 및 승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부서에서 저희를 좀 어려워합니다. 저희 팀 선배 중에는 일부러 조금 까칠하게 행동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 사원이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죠. 그런데 아무래도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은데 행동거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nswer


'회사에서 힘 좀 쓰는 부서'에서 근무하시네요. 대체적으로 비서실, 인사팀, 재무팀, 자금팀, 기획팀, 운영팀 등이 힘 좀 쓰는 부서에 속합니다. 회사 별로 명칭은 상이할 수 있죠. 이런 부서에 속한 분들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타부서 눈치도 덜 보고요. 부서 중에서는 '갑'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갑'과 '을'의 지위를 반복했습니다. 첫 직장은 조폭 빼고 무서운 게 없다는 곳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절대 갑'이었죠. 일화를 말씀드리면, 회사 건물 앞에서 주정차 위반 단속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는 구청 교통지도과에 전화를 걸어 "회사 앞에서 단속하면 어떡하느냐"며 당당하게(뻔뻔하게) 항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주 몹쓸 짓을 했죠. 당시에는 정말 조폭 빼고 무서운 분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 있네요. 회사 선배. 사실 회사 선배가 제일 무서웠죠.


두 번째 직장은 컨설팅 회사였으니 가오는 살지만... '완전 을'이었죠. 제 신분(?)이 갑에서 을로 바뀌니까 사람들이 초면에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제가 그동안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던 거죠. 그때 느꼈던 상실감이란...


국내 대기업으로 이직해서 첫 직장은 기획실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그룹 내에서는 '사내 갑'이었죠. 다음 부서는 인하우스 컨설팅 조직이었으니까 '사내 을'이었고요. 이런 식으로 지난 20년간 갑과 을의 위치를 왔다갔다하면서 느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갑의 힘의 원천은 개인 역량이 아니라 조직에서 비롯된다.

2. 갑과 을의 위치는 언제든지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다.

3. 갑에 익숙한 사람은 을이 되는 순간 별 볼일 없어진다.


결국 누구나 '한때 갑'일 수는 있지만 '평생 갑'일 수는 없고, '상대적 갑'일 수는 있어도 '절대적 갑'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갑은 개인이 잘나서 된 게 아니기 때문에 을로 추락하는 순간 별 볼일 없게 된다는 거죠. 갑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순간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니까요. 또한 갑으로서 을과 맺은 인간관계는 갑의 지위를 잃는 순간 함께 상실하게 됩니다. 갑이 아닌데 상대방이 나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한때 갑'일 수는 있지만 '평생 갑'일 수는 없고,
'상대적 갑'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 갑'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갑으로서의 지위가 천년만년 갈 것처럼 행동하는 분들이 많죠. 개중에는 자신이 위치가 상대적으로 갑인지 을인지 분석해본 뒤, 갑이라고 판단되면 갑처럼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갑이 마치 무슨 대단한 벼슬인양 갑의 지위를 최대한 행사하려고 하죠. 심지어 자신이 갑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넌지시 알려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을처럼 행동하게끔 하고 이를 은근히 즐기죠. 모두 인격이 성숙하지 않은 분들의 지지리 못난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렇게 갑질을 당한 을은 그 순간에는 울며 겨자먹기로 '을의 의무'를 다할지 몰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응어리가 생기게 되고 이게 쌓이고 쌓이면 결국 갑에 대한 반감으로 바뀌게 됩니다. 당연하죠. 모두들 자존감이 있는 인격체인데.


문제는 반감의 화살이 갑질한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기업 전체로 향하게 된다는 거죠. 결국 못난 직원 한 명의 적절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기업 전체가 손해 보는 상황으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기내식 라면이 다 익지 않았다며 기내 통로에 접시와 냅킨을 던지는 등 난동을 피운 '라면 상무'  [사진 출처: SBS 뉴스]


갑과 을의 위치를 여러 차례 반복해온 20년 차 직장인으로서 어쭙잖은 조언을 드리자면 '갑일수록 을처럼 행동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갑일수록 을처럼 행동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갑이 을처럼 행동하라는 의미가 비굴하게 굽실거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갑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상대편은 '이 사람 혹시 무슨 약점 있나?'라고 오해하고 오히려 우습게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상대편의 호의를 '약함'으로 보고 이를 악용하는 분들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런 분들 역시 인격이 성숙하지 않은 분들이죠.


"호의가 계속 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사진 출처: 영화 '부당거래']


갑인데 을처럼 행동하라는 말씀은 갑으로서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하되 상대방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불필요한 위압감은 느끼지 않도록 하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갑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서 을이 갑의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을로서의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말씀이죠.    


예의를 갖춰 불필요한 위압감은 느끼지 않도록 하라
을로서의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똑같이 예의를 갖추고 격식을 차리더라도 을이 하면 "싹싹하다"라고 하는 반면 갑이 그러면 "겸손하다"라고 얘기합니다. 겸손하다는 말씀 들어서 나쁠 건 없죠. 겸손은 미덕이고 따라서 모두가 겸손한 사람을 '어프리시에이트'(appreciate) 합니다. 겸손한 사람한테는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려고 하고요.

또한 대등한 인간관계는 오래가지만 상하관계로 맺어진 사이는 그때뿐입니다. 동갑내기 군대 고참을 길에서 만나면 그 순간에는 "병장니~임!" 하며 반가울지 몰라도 다시 만나 술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갑을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포지셔닝하면 그 관계는 더 오래갈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갑을 위해서도 좋다는 말씀이죠.


갑을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포지셔닝하면 그 관계는 더 오래갈 수 있다


한 사람한테 갑질하는 게 길어야 1~2년인데 그동안 갑질하면 뭐합니까? 장기적으로 좋은 사람 평가 듣고 인간관계 오래 유지하는 게 개인을 위해서 훨씬 더 좋은 것 아닌가요? 갑질하느라 소탐대실하지 마시죠. 그게 개인한테는 물론 그 사람이 속한 기업 입장에서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죠. 순간적인 '갑질의 유혹'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저라고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한번 폼 잡고 싶죠. 하지만 그건 다시 한번, '지지리 못난' 생각입니다.


고교 동창인 오 과장에게 갑질해서 술접대 받는 나쁜 친구(?) [사진 출처: tvN 드라마 '미생']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 또한 갑의 위치에 있을 때 갑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갑질이 갑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갑은 을보다 금전적 보상이 적기 때문에 '갑질이라는 특권'이라도 행사하지 않으면 왠지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겠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고, 바른 사회 구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또 한 번, '지지리 못난'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제 성격상 갑이 잘 맞지는 않았습니다. 동료들에 비하면 정도가 약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갑질은 갑질이었죠.)


지금은 절대 갑질 안 합니다.


아니다.


지금은 갑이 아니어서 갑질 못합니다.


슬프네요.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갑의 힘의 원천은 개인이 아닌 조직에서 비롯되고, 갑을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갑에 익숙한 사람은 을이 되는 순간 별 볼일 없어진다.

2. 갑일수록 을에게 예의를 갖춰 불필요한 위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을이 을로서의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

3. 갑이 이렇게 을처럼 행동하면 장기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추신 1


요즘 들어 '갑질'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모 회사 인사팀장의 '갑질 성추행'이 논란이 되더니 최근에는 모 그룹 일가의 '갑질 폭력'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네요.


"갑일수록 을처럼 행동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주장은 사실 재벌 그룹 오너에게 더 잘 들어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모 그룹 회장님의 아들인 B 부회장님은 '갑질 안 하기'로 유명합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임원은 물론 자기보다 훨씬 어린 직원들에게도 모두 존칭을 사용합니다. 또한 웬만하면 화를 잘 내지 않습니다. 어떤 제안이 못 마땅할 경우에는 "예, 잘 알겠습니다"라고 넘어가고, 매우 못마땅할 경우에는 "저는 좀 생각이 다른데 다음 기회에 다시 얘기해보죠"라고 합니다. 불호령과 호통에 익숙한 이 그룹 임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중에 이 그룹에서 아버님인 회장님과 아들인 부회장님 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을 때 거의 모든 임원들이 부회장님의 편에 섰습니다. 물론 부회장님의 '갑질 안 하기'외에도 또 다른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분의 겸손한 태도가 일정 부분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즘 '갑질'이라는 트로트 곡도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트로트를 즐겨 듣지는 않지만 이 곡의 직설적인 가사는 조금 와 닿네요.  


기왕에 큰소리치고 갑질을 할 거면 / 팔자 피게 도와주던지 / 고까짓 거 도와주면서 / 요까짓 거 팔아주면서 / 어디 와서 갑질이냐 / 이 문 열고 나가서 너 같은 분 만나세요 / 인생 똑바로 사세요

'갑질' by 김기중


농! 안 됩니다. 아무리 크게 도와줘도 갑질은 하지 마세요. '갑'일수록 '을'처럼 행동하세요.




추신 2


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울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모 인사의 발언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예전에 저를 심적으로 매우 괴롭게 했던 어느 몹쓸 상사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서였죠. 순간 욱 하는 마음에 한동안 잘하지 않던 "쉣"을 연발했습니다.


몹쓸 상사를 P상무님이라고 할까요. 당시 저는 P상무님께서 맡으신 본부 내 팀장이었고요.


하루는 P상무님이 제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제 팀원들에게 일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죠. 제 팀원들에게 일을 시키기 전에 제게 먼저 말씀을 해달라고요. 그랬더니 화를 버럭 내시더라고요.


"내가 팀원들에게 일 시키는 것도 네 허락을 맡아야 돼? 팀원들 업무 분장에 대한 최종 결제권은 본부장한테 있어! 그런데 네가 뭔데 내가 너한테 그걸 허락을 맡아야 돼?"


그래서 제가 "허락을 맡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팀장이랑 같이 협의해서 결정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다가 거의 쌍욕을 들었습니다.


또 이분이 술만 드시면 조금 과격해지세요. 아니다, 평소에도 과격하셨지. 어쨌든... 술 못 먹는 사람들에게 술 먹이는 것도 좋아하시고요. 


그런데 하루는 회식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회식 자리가 불편하거나 기분 나쁜 사람은 지금 바로 집에 가도 좋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회식 자리가 불편했거든요. 그래서 적당히 술 마시다가 눈치 봐서 살며시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무님의 그런 말씀을 듣고 나니까 오히려 집에 가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상무님 말씀은 "중간에 집에 가면 기분 나빠서 가는 것으로 이해하겠어요"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저처럼 집에 일찍 가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집에 가기 더 힘들어진 거죠.


아마 정말 집안 사정이 있어서 중간에 일어나려고 했다가 상무님의 그러한 말씀을 듣고는 못 가신 분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상무님의 말씀은 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갈 테면 가봐"였죠.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그래서 "집에 가면 죽어!"라는 협박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었던 거였죠. 제 추측이 맞았다는 것은 바로 다음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상무님은 의기양양하게 제게 말씀하셨죠. 


"어제 내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중간에 아무도 못 가던데."


아마 자기 말씀 한 마디에 꼼짝 못 하고 끝까지 남아 있던 직원들을 보시면서 뿌듯하셨나 봐요.


P상무님은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자기의 권한은 100% 행사하려는 분이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회사에서의 권한은 칼로 두부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 간 권한이 겹치거나 충돌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죠. 그렇기 때문에 누가 자기의 권한을 100% 다 행사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의 권한을 침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자기의 권한을 100% 다 행사하려고 하지 않죠. 또한 자기의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권한과 충돌이 예상될 경우 사전에 조율하고 양해를 구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방에게 무력감과 불쾌감을 안겨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분들은 자기의 권한을 100%, 아니 120%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다른 분들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도 모르고요.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면서요.


그게 바로 '갑질'입니다. 다른 게 갑질이 아니고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러한 갑질에 대해서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 편이 하는 갑질은 갑질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갑질은 누가 해도 갑질입니다. 당해서도 안 되지만 해서도 안 됩니다.


아, 자꾸 뉴스 보면서 회사에서 당했던 일 생각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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