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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Dec 23. 2020

시의 묘사,
마술 세계로 들어가는 주문

1. 시적(詩的) 언어화라는 마술 


  묘사는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는 세계로부터 시인이 받은 지배적인 인상을 구체화해서 표현하는 문학의 한 장르이다. 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인 묘사는 시가 담지해야 할 언어의 회화성을 보장하는 언어적 장치이다. 회화성은 시의 본질이다. 눈에 보이듯이 그린다는 표현처럼 시 한 편은 사물이나 상황을 한 폭의 그림을 보듯이 담아내야 한다. 

  무릇 묘사는 일체의 문학 장르에 기본이어서 시 외에도 소설, 수필, 희곡 등에도 필수요건이다. 묘사는 여타 언술 행위, 즉 언어로 사실이나 의견, 감정을 서술하는 글과 문학을 구별해주고 문학을 ‘문학’으로 존재하게 하는 요체이다. 산문 형식인 소설이나 수필이 묘사를 기본으로 삼아 진술과 분석, 그 외 산문적 요소를 더하고,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희곡에서는 묘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시는 묘사가 주를 이루는 문학 형식이다. 산문시, 대화체시, 분석적이거나 서사적인 시도 가능하지만 이런 변용에서도 묘사는 시를 시답게 해주는 언어적 실천이다.

  묘사는 설명이나 설교, 또는 진술과 다르다. 그렇지만 묘사는 그저 감정의 투사와는 다르다. 시인은 자신의 감상이나 감정을 뒤로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기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묘사에서는 사실성이 중심이다. 현실 속 장면 혹은 사건의 정황을 사실적으로 기술하면서 시적 세계를 구축해 가야 한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김종삼, <장편 2>


묘사와 관련해서 자주 인용되는 시인 김종삼의 <장편 2>는 사실적 묘사로만 구성되었다. 시인은 어린 소녀나 주인 영감에 대해 어떤 판단이나 정서적 개입도 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이 시에서 우리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과 캐릭터의 동작만을 본다. 마지막 행에서 소녀가 내보이는 두 개의 10전이 이 시의 내용을 마무리하고 주제를 드러낸다. 군더더기 없이 시가 오롯하게 현실에 서 있다. 

     이런 시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도 그 의미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의미가 배가되어 장님 어버이를 이끈 거지소녀의 이미지가 갈수록 생생해진다. 그 이유는 시인의 시선이라는 생생한 육신의 체험에 기원을 둔 상상력에서 시가 쓰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시적 상상력이 가져오는 효과를 ‘시적 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시적’이라는 표현은 ‘시’의 마술만 지칭하는 듯 들리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언어가 갖는 매혹적 힘이다. 언어는 인간 존재에 필수적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이나 가능성은 한계가 없다고 해도 좋다. 사회에서 우리는 언어를 일상 대화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문자언어는 인터넷과 5차 산업의 시대에도 여전히, 아니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언어를 사용하는가의 여부이다. 무엇보다 꾸준히 언어 사용법을 학습하고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져 간다. 그중에서도 문학인은, 특히 시인은 언어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넓혀감으로써 독자의 눈앞에 시 한 편 속에 현실의 마술적 차원을 펼쳐 놓아야 한다.



2. 현실이 마술에 걸릴 때


시적 마술은 묘사에서 나온다. 물론 관념이나 추상에서도 시는 쓰인다. 무엇보다 뛰어난 시는 마술적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그 사실적 묘사야말로 시가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장치이다. 또 묘사에서 느끼는 감동의 깊이와 폭은 상당하다. 


군중 속 홀연히 나타난 얼굴들

젖은 검은 나뭇가지 위 꽃잎들

- 에즈라 파운드, <지하철역에서> 전문

이 시는 1912년 빠리의 지하철역에서 경험한 한 순간을 담은,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시다. 파운드는 영미 모더니즘을 이끈 시인으로, 특히 이미지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엽 프랑스에 상징주의가 있다면, 미국 시에는 이미지즘이 있어 20세기 미국 시단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이 시는 두 행으로 이루어진, 총 14개의 낱말로 구성된 짧은 시이다. 영어로 쓰인 최초의 하이쿠로 알려지기도 하지만, 그리고 파운드가 일본의 하이쿠 형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하이쿠 형식에는 꼭 일치하지 않는다. 


 시의 첫 행은 지하철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면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시인은 사람들의 얼굴이 “홀연히 나타”났다고 한다. 원어는 apparition인데 영어에서 이 단어는 마치 유령처럼 나타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군중 속 얼굴이 등장하는 방식뿐 아니라 그들의 얼굴이 유령 같다는 비유까지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얼굴에 관해 시인은 더 이상 어떤 설명을 더하지 않는다. 파운드는 이미지즘에 관하여 시가 더 이상 설명이나 서술하지 않고 순간에 포착된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시를 읽는 독자는 그 얼굴들이 누구이고 왜 유령 같은 지를 묻기보다는 시인과 함께 지하철역에서 스치듯 마주칠 얼굴들을 떠올려야 한다. 일체의 설명 없이 유령 같은 얼굴의 나타남을 묘사함으로써 시인은 되레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이 글에서 제시한 ‘시적 마술’의 차원에서 다시 표현해본다면 독자는 시인의 묘사 언어로부터 신호를 받아 자신도 모르게 그 시적 마술의 세계에 매료된다. 


  2행에서는 군중 속에서 시인이 포착한 얼굴들이 검게 젖은 나뭇가지 위에 핀 꽃잎들과 병치된다. 파운드의 이 시는 특히 동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인데, 첫 행과 두 행이 어떤 연관성도 없는 이미지를 묘사하지만 둘이 앞 뒤 행으로 병치되어 놓이는 순간 시적 세계가 열리게 된다.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을 할 때도 동사를 배제하고 명사 어절로만 만들어서 영어원문과 맞도록 했는데, 완성된 번역문 자체가 시에서 불필요한 설명을 배제하는 것이 묘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체로 영미문학 학계에서나 문단에서 이 시는 파운드의 이미지즘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예로 알려져 있고 “젖은 검은 나뭇가지 위 꽃잎”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도심의 지하철역에서 만날 수 있는 유령 같은 얼굴의 상징성이 부각되지만, 이 시가 딛고 선 현실의 차원은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묘사는 사실성에 기초해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시각에서 이 시를 다시 읽으면, “지하철역에서”라는 제목이 지칭하는 바, 도시생활에 익숙한 독자에게 낯익을, 이 현실적 삶의 공간이 시의 형태로 불려 나오고 그곳에서 스치듯 지나는 익명의 낯선 이들이 어느 순간 유령처럼 느껴지는 순간의 경험이 사실적 근거 없는 감상이나 정서가 아니라, 지하철역이라는 물적 조건에서, 구체적인 상황과 시간 속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 시가 포착한 현실의 순간이 “젖은 검은 나뭇가지 위 꽃잎”의 이미지로 변하는 마술은 언어를 통해 일어나며, 언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물성을 갖고 있는 것임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3. 언어의 겹이 빚는 마술


  시적 마술은 현실의 사물과 상황에 언어의 겹을 씌울 때 생긴다. 하늘 높이 날 던 새가 지상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곧장 그것을 향해 하강하듯 시인의 시선은 한 사물이나 상황에 집중한다.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의 주변이 뒤로 죽 밀려나가고 단 한 사람, 사물만을 응시하는 장면과 같다.


 시의 묘사는 이 응시의 산물이다. 하지만 응시만으론 묘사는 완결되지 않는다. 시인의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로 쓰이지 않은 것은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적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예술가이다. 예술을 위해선 단지 순간적 영감이나 타고난 감수성만으론 부족하고, 언어감각과 끈기 있는 기예의 연마가 필요하다. 마치 피아노 연주자가 매일 정해진 시간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연습을 해야 하듯, 시인도 매일 규칙적으로 시적 언어를 갈고닦아야 한다. 그런 노력의 결과 시인은 현실에 언어의 겹을 입혀, 마술적 세계의 문을 열게 된다.


 시인 오규원의 말을 빌면,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나름의 고유한 시적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시로 형성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판에 박힌 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성에 기반해서 시적 세계를 창조한다. 나아가 이렇게 창조된 시적 세계는 시인의 꼼꼼한 관찰과 폭넓은 경험을 통해 얻은 “미적 인식”이 담겨 있어야 한다. 다시 오규원의 말을 빌면,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의 언어적 출현”이다. 20세기 영미시의 모더니즘을 연 또 한 편의 시를 읽어보자. 


자 이제 우리 갑시다, 당신과 나,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에 펼쳐져 있을 때, 

우리 갑시다, 인적 드문 거리를 지나 

싸구려 일박 여인숙에서의 불안한 밤과 

굴 껍데기가 굴러다니는 톱밥 깔린 레스토랑의 

웅성대는 뒷골목을 지나서. 

음흉한 의도를 가진 

지루한 논쟁처럼 이어지는 거리는 

당신을 압도적인 문제로 인도하겠지만, 

오 “이게 뭐지?”라고는 묻지 마시오.

그저 우리 함께 그곳을 방문합시다.

    - T. S. 엘리엇,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의 도입부    


연애 시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시는 연애 고백을 하지 못하고 주춤하는 남성을 독려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시에서 사랑은 단지 연애담에 그치지 않고, 삶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과 의지력을 결여한 현대인의 심리적 고갈 상태를 담는 시적 장치가 된다. 그 흔한 연애 고백마저도 하지 못하는 현대인은 부친 살해범을 당장 처단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끌어안고 있는 내적 갈등과 고민에 비해 얼마나 무기력한가? 엘리엇의 성찰 대상인 현대인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목숨을 걸만큼 비장한 대의명분도 진지한 이념도 상실한 상태이다. 


  이런 심오한 시적 인식을 담은 이 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관념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진부한 이미지로 치장하지도 않는다. 대화체로 말을 걸듯이 시작한 첫 행은 런던 뒷골목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가보지 못한 20세기 초엽의 런던 뒷골목이 눈에 선명히 떠오른다. 엘리엇의 시어들이 열어놓기 시작한 세계는 21세기 독자를 한 세기 건너 런던의 안개 자욱한 해 저물녘 어느 골목으로 불러낸다. 이것이야말로 언어, 아니 시적인 언어 사용법이 만들어내는 마술이며, 현실 속에 열리는 환상이다. 이런 사실적인 묘사를 통한 비현실적 환영 속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이라는 거울의 뒷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시적 마술의 힘이다. 여기 이곳에 낯익은 생활 속에서 시를 읽는 동안 뭔가 일어난다. 현존 삶의 방식에서 이 뭔가라는 마술적 ‘사건’을 분출시키는 매체는 다름 아닌 우리의 언어이다. 

  엘리엇은 시 창작 과정을 몰개성 이론과 객관적 상관물이란 개념으로 이론화한 바 있다. 이 글에서 엘리엇의 시 이론을 꼼꼼히 검토할 수는 없으나, 간단히 말하면 시인이 사물과 상황을 관찰해서 얻은 인식이 언어를 통해 객관화되어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 이때 일정한 이미지, 행위나 상황이라는 매개를 통해 시인의 사적인 정서나 인식이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의 개성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고, 그의 느낌과 인식은 시적 상황, 시적 비유와 상징 등을 통해 걸러져서 감정 토로가 아닌, 매개된 시적 상관물 혹은 구체화된 언어를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엘리엇의 시에서 시인은 현대의 정신적 불모를 일일이 집어내지 않아도 프루프록이 지나가야 하는 뒷골목의 이미지로 충분히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4. 마술세계를 여는 키: 묘사라는 주문


  묘사가 사물이나 상황, 행동의 사실성에 기초하고 있지만, 사실을 그저 나열하거나 서술하는 것으로는 묘사라고 볼 수 없다. 가령 쇼핑몰을 묘사한다고 가정해보자. 누구나 쇼핑몰 하면 떠올리는 세부 사실, 가령 상점들이 즐비하다던가, 푸드 코트에는 사람들이 줄 서서 음식을 기다린다는 등의 내용은 진부하다. 핵심은 흔해빠진 일상의 현실을 어떻게 새롭고 신선하게 묘사할 것인가이다. 흔하고 뻔한, 반복된 일상의 국면을 낯설게 만드는 출발점은 관점과 시각, 즉 어떻게 보는가이다.


 반면 쇼핑몰에 가는 고객의 입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청소부 혹은 경비원의 관점은 다르다. 쇼핑의 목적이 아니라 잠시 쉬었다가 가려고 들른 사람의 시선도 다를 것이다. 이처럼 어느 위치와 입장에서 상황의 사실성을 묘사하는가에 따라 시는 새로워진다.


  앞서 인용한 김종삼의 시에서 시인은 자신이 바라보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거지소녀가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러도 “태연하였다”는 대목에서 이 현실적 상황은 시로 변한다. 이 변화를 이끌어 현실에 마술을 거는 것은 시인의 시선, 즉 거지소녀의 태연함을 주목하는 세심한 관찰이다. 그 장소에 있었을 누구나 목격한 상황이지만 시인은 소녀의 태도에서 시적 인식을 획득하고 시어의 구성을 통해서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듯이 보이지만 이 시는 시인의 시선과 인식체계를 거쳐 언어의 조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시의 묘사는 이처럼 상황을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마술적 순간을 포착해내는 것인데, 김종삼의 시 같은 유형을 오규원은 서사적 묘사로 분류한다. 상황이 있고 서로 다른 시점의 등장인물들이 있고 그들 사이의 관계가 그려지는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서사적 묘사가 이야기와 관련되었다면, 서경적 묘사는 시인 바깥의 상황, 장소 혹은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다.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 김사인, <바짝 붙어서다>의 첫 연


 김사인의 시는 폐휴지를 모으는 팔순 노인이 차가 지나가도록 벽에 바짝 붙어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바짝 붙어 선다는 행위의 묘사만으로 우리는 이미 삶의 신산함을 느낄 수 있다. 서경적 묘사가 풍경을 묘사한다고 해서 꼭 객관적 상황 묘사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묘사의 또 다른 갈래인 심상적 묘사는 시인의 주관적 심리와 정서를 표현한 것인데, 좋은 시에선 서경과 심상이 잘 혼합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굽이진 돌담을 돌아서 돌아서

달이 흐른다 놀이 흐른다

하이얀 그림자

은실을 즈르르 몰아서

꿈밭에 봄마음 가고 가고 또 간다.

  - 김영랑, <꿈밭에 봄마음> 전문


시인 김영랑의 <꿈밭에 봄마음>은 어느 봄밤의 달빛이 흐르는 정경을 담은 시인데 풍경과 함께 시인의 정서가 담뿍 담겨있다. “은실을 즈르르 몰아서/ 꿈밭에 봄마음 가고 가고 또 간다”라는 마지막 두 행이 달빛 풍경을 주관적으로 확장시켜 시인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봄밤의 꿈같은 정경을 독자가 눈에 그리면서 동시에 그 정서를 만끽하게 해 준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시인의 인상을 언어를 통해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묘사는 일상 어법과는 다르게 시를 구성함으로써 독자의 선입견과 통념을 깨트린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매번 쓰일 때마다 혁신적이며, 그 혁신의 도구가 바로 묘사이다.


 묘사를 다루는 이론서들은 서사적, 서경적, 심정적 묘사 외에도 다양하게 묘사를 분류해놓고 있지만, 결국 시 한 편에 동원되는 묘사는 이 다양한 형식들의 복합체로 나타난다.  잘된 묘사는 섬세한 관찰을 담고 있으며, 시인의 관찰내용을 언어로 시각화하는 데 있어 뛰어나다. 묘사의 성공은 객관적 상황과 시인의 주관적 심리를 아울러서 미학적으로 심오한 시적 통찰을 제공하는데 달려있다. 그 통찰이 때로는 폐부를 찌르고, 우리의 무딘 감각을 활활 살아나게 함으로써, 마술적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이끈다.


*이 글은 <미주 시학> (2020)에 실은 시론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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