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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Apr 13. 2019

숨 쉬듯 쓴 시

칼 윌슨 베이커를 번역하다

내 조촐한 노래와 시는/ 신의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 신은 별과 별 사이를 오가느라/ 이 너무도 가벼운 깃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네

신의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 내가 주워 머리 땋을 때 하나씩 넣었지/뭇사람들은 본 척도 않지만/ 깃털은 내 영혼을 맑게 해 주네

               - 칼 윌슨 베이커의 시 「시인의 노래」 중


칼 윌슨 베이커(1878-1960)는 텍사스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일반 독자들에게 베이커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살아있는 동안 베이커는 제법 유명세를 누린 시인이자 작가이며 교수이자 강연자였다. 사후 베이커의 이름이 미국 주류 문단에서 조차 묻혔던 가장 큰 이유는 베이커의 작품 활동이 텍사스 동부의 작은 마을 나코그도치스(Nacogdoches)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카고대학과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수학하고 예일대 출판부의 문예지에 정기적으로 시를 발표하고 또 동 출판사에서 대표시집 두 권을 출간했으며,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베이커의 활동영역은 단지 자신의 주거지 주변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강연을 다녔고, 주류 문단의 인사들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기는 했지만 베이커의 작가로서의 명성은 텍사스 주 경계를 넘어가지 못한 듯하다.


 사후 작가로서 거의 잊힌 베이커가 최근 미국 학계 일각에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나코그도치스 소재 대학의 교수인 사라 레그랜드 잭슨이 2005년에 텍사스에이엔앰 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한 베이커의 전기였다. 이 전기의 편집을 담당한 제임스 그림쇼는 편집자의 서문에서 미국의 독자 대중에게 베이커의 이름은 생소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잭슨의 베이커 전기가 다시금 시인의 문학적 명성과 의의를 복원해주리라는 기대를 표명했다. 현재 베이커의 주요 시집들이 복간되고 있고 아동문학작품과 에세이집도 복간되어있다. 미국의 출판계와 학술계를 중심으로 베이커를 알리려는 노력이 조용히 진행되는 와중에 이번에 베이커의 시와 산문을 골라 한국어로 번역해서 출간하게 되었고 마침 이 글을 쓸 기회가 와서 베이커의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작가로서의 생애와 창작활동을 간략히 전한다.


  우리에게 통상 알려진 유명 작가들은 평생 문학창작에 열정적으로 헌신했지만 대중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수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다. 또 작가의 유명세란 시대적 상황뿐 아니라 출판계와 학계의 경향 등에 크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문학연구자이자 비평가로서 주어진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대중의 관심이라는 사정거리에 미처 들어와 있지 않는 작가들을 찾아내어 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짚어서 독서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독자들에게 조차 생소한 작가 베이커를 번역, 소개하는 이 지면은 문학적 열정으로 평생을 살다 떠난 또 한 명의 시인을 우리 곁으로 불러와 이 시대 진정 문학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시를 쓰고 또 어떻게 쓸 것인지를 되묻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이며 아동문학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했던 베이커는 1878년 10월 13일 아칸서스 주의 리틀락(Little Rock, Arkansas)에서 태어나 자랐다. 칼의 이름은 어머니와 각별한 사이였던 남자 형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칼은 원래 남자의 이름[Karl]이어서 성장기에 이름과 관련된 소소한 문제들이 빈번히 일어났던 터라 15세 때 이름 끝에 묵음인 ‘e’를 넣어서 [Karle] 여성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평생 동안 ‘미스터 칼’이라는 호칭을 담은 편지를 받아야 했고 서평가나 비평가들은 칼을 종종 남자로 착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던 칼은 일찍이 작가를 꿈꾸었다. 8세 때 쓴 생애 첫 시 「집」이 『하퍼스 어린이』잡지의 “편지통”이라는 코너에 실렸다. 이 시는 로즈론이라고 불리던 집 마당에 서 있는 수도 펌프에 보내는 헌사였다. 어머니와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서 칼은 어린 시절 연습장을 전부 시로 채우면서 보냈다.

   열네 번째 생일이 되기 직전 칼의 시 두 편이 1892년 가을 『침례교도』라는 신문에 실렸고, 2년 뒤 대입전문 특례 학교에 입학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유로운 독서를 즐기면서 각종 학교생활에 활발히 참여했다. 1895년 수필을 발표한 칼은 장학생이 되었고, 1898년 리틀락으로 돌아와 임시 교사직을 얻어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 해 여름에는 시카고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다.  


  윌슨 가족이 리틀락을 떠나 텍사스로 이주하게 된 계기는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이나 서정시의 한 부분과도 같다. 사업차 여행을 하던 칼의 아버지는 어느 날 나코그도치스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날 밤 그는 이 작은 마을에서 경험한 달빛이 흐르는 아름다운 밤에 매료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곳의 달밤을 잊을 수 없어 그는 가족을 데리고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마을에 정착한 뒤 곧 사업을 시작한 윌슨은 몇 년 뒤 텍사스를 포함 여러 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칼은 교사직으로 모은 수입과 부모의 도움을 받아 시카고대학에 1년간 강의를 들었다. 대학에서 칼은 로버트 헤릭이라는 소설가와,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본 무디로부터 사사한다. 1년 뒤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자 간호를 위해 집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주류 문단에서 작가와 교수로 성공할 기회를 잃었지만, 작가의 꿈을 접지 않고 더욱 집필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주로 시를 썼다. 1902년의 화재로 집이 전소해서 매일 썼던 글을 포함한 원고를 잃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시와 두 편의 긴 단편소설은 보존할 수 있었다. 1903년 부모의 집을 떠나 리틀락의 고등학교에서 2년간 가르치면서 칼은 집필 작업을 계속한다. 1903년 시 「시인」이 ≪하퍼스≫에 팔렸고 1905년에는 여러 잡지에 수필과 시를 싣게 되었다. 당시 칼은 “샬롯 윌슨”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906년부터는 단편소설도 팔게 된다. 1907년 나코그도치스 출신 사업가 토마스 엘리스 베이커와 결혼한다.


  결혼 후 칼은 주로 가족생활을 소재로 썼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동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플링크의 정원』이라는 판타지 아동문학을 써서 아이들에게 읽어 주곤 했다. 1920년에 예일대 출판부에서 이 책을 출간한다. 베이커의 대표적 시집 『푸른 연기』와 『떨기나무』는 물론이고 산문 우화집 『낡은 동전』도 예일대 출판부에서 출간했다.


   작가로 입지를 다진 후 칼은 텍사스 인근 지역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강연을 다니고 문학협회 등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23년 스티븐 오스틴 주립 교육대학이 나코그도치스에 문을 열자 강의를 시작했고, 10년간 교수직을 역임했다. 1926-27년에는 일 년간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24년에 남부 감리교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커는 텍사스 철학 학회를 설립하고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텍사스시인협회와 피 베타 카파(Phi Beta Kappa)의 설립에도 기여했다. 1924년 남부감리교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교수직과 작가로서의 창작활동을 병행하면서 칼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독서 교재와 텍사스주 공립학교 교재를 출간했다. 1925년에 어린아이들에게 텍사스 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에서 『텍사스 깃발 입문서』를 만들었다. 이 책은 텍사스 주의 교과서편찬위원회에 의해 채택이 되었다. 뒤이어 같은 종류의 책 『두 명의 작은 텍사스인』을 출간했고 1930년에는 유명한 에세이집 『탱글우드의 새』를 남서부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1931년에는 『말 탄 몽상가』라는 제목으로 시선집을 출간했고, 이 시집은 퓰리처상 후보로 올랐다.


  1930년 나코그도치스 인근의 오일 광산이 문을 열자 이에 영감을 받아 소설 『패밀리 스타일』을 1937년 출간했다. 텍사스 주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텍사스 혁명에 대한 소설 『황야의 별』을 썼다. 이 두 소설 외에도 미간행 소설을 서너 편 더 썼다.  


 1960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베이커가 일궈 온 작가로서의 이력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다. 동부지역 중심으로 구축된 출판 산업의 문턱은 시카고를 기점으로 서쪽 지역의 작가들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작가들에게는 아주 높았다. 당시의 관행을 고려하면 칼의 성공은 암묵적 금기와 편견의 장벽을 넘어선 것으로 간주되었다. 69세에 마지막 책을 끝으로 건강악화로 집필을 계속할 수 없게 될 때까지 베이커의 작품에는 유년과 청년기의 꿈, 특히 여성이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여성에게 아내와 엄마의 역할 이외에 다른 일을 기대하지도 권하지도 않던 시대에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서 칼이 작가 생활을 지속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도움과 베이커 자신의 개인적 욕구로 중단하지 않고 창작에 몰두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인간이라면 아름다움을 향한 깊은 욕구를 갖고 있다고 믿은 베이커는 레이스 한 조각, 농장 아낙의 치마에 달린 리본, 낡은 기름통에 담긴 꽃 등 사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 열망을 발견했다. 소박한 것들이 갖는 미적 차원을 기록하려고 애썼던 베이커는 일상 속에서 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언어나 예술로 표현할 줄 모르는 뭇사람들을 위해 평범함 속의 아름다움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던 작가로 기억될 수 있다.


  시를 많이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베이커의 시 중 「곱게 나이 들고 싶다」를 알고 있을 것이다(기존의 번역된 제목은 <아름답게 나이들게 하소서>이다). 베이커는 다양한 소재로 시를 썼지만, 특히 서정시가 뛰어났다. 예일대 출판부의 편집자가 적극적으로 베이커의 시를 『예일 리뷰』에 싣고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이유도 바로 베이커의 서정시 때문이었다. 베이커의 서정시는 평범한 일상인이 겪게 되는 피곤함과 나날의 무게, ‘막다른 길’과도 같은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 놓인 현대인의 자유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다. 그녀의 시에 담긴 강한 서정적 경향은 시가 무엇인지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마치 어제와 같은 오늘, 또 내일도 변함없을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일견 흔해 보이는 시어와 이미지들이 베이커의 시적 비유 체계를 거치면서 일상의 시간 밑에 흐르는 인간적 동력을 불러온다. 베이커는 한 산문에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자세한 관찰과 숙고를 통해 찾아내야 할 시인의 자세를 에둘러 이렇게 쓴다.


 "자세히 바라볼 때 비로소 사랑스럽게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은 특별하다. 아름다움을 부드럽게 다루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내겐 언제나 닳고 닳은 친숙함을 버텨낼 수 있는 것만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시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은 개인이 피할 수 없는 슬픔의 순간을 오랜 친구와 낯선 사람의 대조를 통해 그려낸다. 이 시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슬픔의 항상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슬픔이라는 식상한 소재가 베이커 특유의 관찰과 성찰적 사유를 통해 그 항상적 조건이 담담하지만 예리한 진실을 담아 새롭게 표현된다.


「고요한 사물처럼 사랑받고 싶다」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특히 숲에서 경험하는 치유의 경험을 자주 다루는 베이커의 자연시적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죽음에 대한 강한 의식을 담아낸 시다. 이 시에서 열거되는 고요한 사물들의 목록과 마지막 연의 죽음이 가져오는 고요 사이의 대조는 충격적이다.


비교적 대중적으로 알려진 「곱게 나이 들고 싶다」는 늙음에 관한 명상을 담고 있는데, 이 시의 표면적인 어조나 분위기 밑에는 마찬가지로 죽음과 필멸의 조건에 대한 사색이 담겨있다. 늙어가는 필멸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면 곱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은 아마도 필멸에 대한 가장 당당하고 인간적인 맞대응이 아닐까. 베이커는 인간끼리 서로가 서로를, 혹은 인간이 사물의 세계를 보면서 ‘타자’를 평범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하는 습관적 태도를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모두 ‘그냥’이라는 존재가 되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서로 상대방을 ‘그냥’의 부류로 밀어 넣으려고 얼마나 악다구니를 부리는지."


이런 평범화, 혹은 보통의 시류에 거슬러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고유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런 소망은 어쩌면 아주 인간적인 것일 텐데 늙음이라는 필연적 과정을 마주한 개인이 저항하기 힘든 시간과 육체적 변화에 대응하면서 곱고 아름답게, 시간이 지나면 더 값져지는 것들처럼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시인의 목소리는 현명하면서도 인간적인 페이소스를 드러낸다.


   베이커의 시가 나무를 노래할 때는 통상적인 비유와 이미지가 아닌, 나무와 시인 자신이 매우 사적으로 연결된 경험을 신선하게 표현한다. 가령 ‘나무와 산책한 뒤 오늘 내 키가 조금 더 자랐다’ 라거나, ‘소나무처럼 키 크고 쭉 뻗은 시를 쓰고 싶다’는 시행은 숲을 자주 찾으며 사색을 한 시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동시에 그 시행을 읽는 독자에게 자연의 치유와 감화력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그 중 「그림자 샘물」에서는 나무를 ‘그림자 샘물’이라고 부른다. 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를 정화의 샘물에 빗댄 것이다. 그림자와 샘물의 연결이라니, 참신하지 않은가. 이런 구절은 베이커만의 독특한 비유이지만 반복해서 읽으면 우리 모두가 숲 속에서 또는 나무와 벗하며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 정서이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러나 말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어떤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시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 순간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 사진기나 휴대폰을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보지만, 디지털 미디어로는 좀체 잡히지 않는 그 감성은 그저 그 순간의 기억 속으로 영구 저장되었다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을 우리 대신 표현해주는 시인의 언어를 만날 때의 기쁨은 시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이해하리라.


  베이커는 한 젊은 비평가가 모 시인의 시집에 관해 평론을 쓰면서 해당 시집에 나무에 대한 시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쓴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시집을 이 젊은 평론가가 읽는다면 틀림없이 실망하겠지만, 그래도 시인이라면 반드시 나무에 대해 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에게는 나무가 딱딱한 껍질로 싸인 식물 그 이상이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 이면에 나무가 갖고 있는 생명과 그 영혼을 포착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평범한 것의 평범성을 비범하게 포착하는 능력, 즉 나무가 나무이면서 나무를 초월하게 되는 순간을 언어로 포착하는 것이 곧 시인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라고 한다.


  베이커는 침례교도 가정에서 자랐다. 물론 성장과정에서 침례교회의 보수성을 경험한 뒤 비판적 태도를 취했고 교회를 바꾸고 독서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신앙을 키워갔지만 기본적인 종교적 성향은 지켰다. 따라서 그녀의 시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하지만 태생이 문학적이었던 베이커는 자신의 신앙심을 좀 더 인본주의적으로 바꾸었고 그녀의 타고난 성격에 따라 신비주의적 영성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 독자들에게 베이커의 시가 짐짓 고답적이며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령 ‘신’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며, ‘천상’, ‘영혼’, ‘아버지의 나라’ 등과 같이 교인들에게나 익숙한 표현들이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종교시들 역시 인간의 존재와 자연에 관한 시들처럼 삶의 덧없음과 필멸의 숙명, 아름다움이 주는 고통과 죽음, 일상의 번잡함과 소소함, 생명의 책임과 의무, 자연의 치유력과 문학의 힘에 대한 신념 등의 주제들을 변주하고 있다. 가령 「내 마음의 무게」와 「우리」는 베이커의 신이 단순한 제도 종교에서의 신 이상으로 현대적 삶의 지표를 제시함과 동시에 현세와 역설적 관계 속에서 개인의 삶을 견인하는 영적인 힘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베이커의 시는 시가 있어야 할 곳은 서정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운다. 정치적 담론이 넘쳐나고 소셜 네트워크 등 다양한 플랫폼이 제공되어 말들이 무성하고 오염되는 시대에, 시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서정에 있다. 그건 시가 다른 언어적 사용보다 월등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이 번창하는 와중에서 적어도 한 분야쯤은 서정의 언어를 위해 남겨두어야 하고 또 그 자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베이커는 어려서부터 시를 써왔기 때문에 시를 쓰는 일이 매우 쉬었다고 한다. 베이커에게 시는 창작의 고통을 통해 쥐어짜듯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영감으로 불현듯 오면 숙련된 성찰과 사색을 통해서 묵혔다가 언어로 표현해내는 과정으로 빚어졌고, 베이커는 이런 과정을 마치 ‘습관처럼,’ 또는 ‘숨 쉬듯이’ 시를 썼다고 표현했다. 베이커의 숨결이 담긴 시가 이 시대 독자에겐 어떻게 읽힐 것인가. 시를 쓰는 사람들은 많아도 시 한 편 제대로 읽지 않는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베이커 시가 시간을 넘어, 또 언어라는 장벽 또는 경계를 넘어 불어주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잠시 멈추어서 시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시는 반드시 그 시가 쓰인 언어로 직접 읽어야 그 시적 경험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모국어에 갇혀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번역은 불가피하다. 결국 외국시를 번역해서 읽는 일은 번역 과정의 상실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국어의 시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확장시키는 일종의 모험 같은 경험이라고 믿는다. 번역문학을 읽는 독자는 모국어로 재창조된 외국작가의 시적 감성과 경험, 상상력과 문명에 대한 사색을 접하게 된다. 시를 번역하는 일이란 바로 모국어가 외국문화를 받아들여 확장되고 변형되며 재창조되는 과정을 목도하는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베이커의 시를 읽으면서 독자들이 모국어로 불쑥 진입해 들어온 외국어적 상상력의 낯설고 기이하지만 신선하고 신비로운 시적 언어의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베이커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표현된, 작가로서의 절실함이 독자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내게] 분명한 진실은 나는 써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내 깊은 저 영혼의 비밀은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무가치한 것이라고. 평범한 삶이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견고함이 아니라 바로 무의미함 때문입니다."


평범함의 무의미성을 마술처럼 변화시키는 것, 그것은 바로 시의 언어, 즉 문학의 힘이다.




이 글은 곧 출간될 모 문예지에 미국 시인 연재기획의 일환으로 쓴 것입니다.


베이커의 시와 산문을 엮은 시산문집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이 문학의 숲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베이커의 시 중 서정시 중심으로 골라 번역했고 잠언적 성격의 짧은 에세이와 새를 관찰하며 쓴 에세이를 수록했습니다.

칼 윌슨 베이커의 시산문집 (문학의 숲)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을 사랑한다.

이 친구들과는 비밀이 없다.

예전에 퍼부어 댔던 지독한 말들은

시간이 흘러 이제 다 잊힌 듯하다.


새로 슬픔이 생겨나 저기 저렇게 서서

차갑고 근엄한 눈초리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오랜 슬픔이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면

내가 좀 더 용기를 내볼 텐데.

            - 표제시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 전문


곱게 나이 들고 싶다.

레이스, 상아, 황금, 비단처럼

섬세하고 고운 것들은

새것일 필요는 없지.

늙은 나무에서 위안을 받고

오래된 거리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못할 건 없지.

나이 들어갈수록 사랑스러워졌으면.

         - 시 "곱게 나이 들고 싶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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