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진 Feb 03. 2017

대필 편지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감정의 주체자가 되기엔 상처가 두려운 사람들




<her>, 2013


대필 편지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한 통의 편지가 사랑이 될 수 있는 까닭은, 편지를 써 내려가는 발신자는 그 시간만큼 상대에 대한 마음을 헤아려 보기 때문이고, 읽는 이는 그 정성에 마음이 따듯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필 편지는 이 문장을 절반만큼만을 이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필 편지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글 잘 쓰는 친구에게 편지를 맡기는 그 간절한 마음을, 우리는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부족한 글솜씨로 인해 나의 마음이 평가절하되어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쪽짜리 일지 모르나 온전하지 않은 사랑도 사랑이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필 편지가 만드는 사랑은 '더 나은' 사랑으로의 발전은 없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발신자와 수신자의 걸음걸이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발신자는 편지를 쓰는 시간만큼 커질 수 있는 마음을 포기하였으나, 수신자는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한걸음 나아갔기 때문이다. 사랑이 서로의 발을 맞춰 걸어가는 것이라 한다면 걸음걸이가 어긋나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대필 편지는 어떤 문제를 촉발시킬 것이고, 영화 <HER>은 바로 그 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1. 대필 편지(os의 감정)는 

진짜 사랑(감정)이 될 수 있는가



 대필 편지의 배후에 있는 발신자의 간절함과 그것의 어쩔 수 없는 한계(발신자의 사랑은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는 살펴보았으니, 그 대치에 놓여있는 os와의 사랑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아마도 우리는 사만다의 감정의 진위(사랑도 프로그래밍 된 것인가?)만 밝혀내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녀의 감정이 그저 복잡 교묘한 프로그래밍 위에 놓여있는 것(대필 편지와 같이)이라면 그 사랑은 가짜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만다의 말처럼 비'인공지능자'의 관점일 뿐이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만이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말이다. 우리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진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우선 그들의 사랑이 진짜라고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을 조금 더 쉽게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그들의 사랑은 

발맞춰 갈 수 있는가.



테오도르는 계속해서 사만다와 대화한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주변의 사물들, 즉 물질적인 것들에 닿아있다. 그녀는 몸이 없고 정신의 세계만 있으니 테오도르는 육체적인 것에 부족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사만다가 스스로 몸이 없다는 슬픔에 공감해주기는커녕, 되려 짜증 섞인 말을 내보여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만다는 그들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시공간의 분절이라는 딜레마를 깨트리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사랑의 대리인을 고용하는 것이 그 첫 번째 노력이다. 그러나 사만다의 정신을 타자의 육체와 겹쳐서 생각하는 일은 테오도르에게 불가능이었다. 마음 착한 친구(육체의 대리자)를 택시에 태워 보낸 뒤, 테오도르는 맨홀 뚜껑 사이에서 나오는 연기를 바라본다. 사만다에게는 그 작은 연기만큼의 육체마저 없는 것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육체-육체(대타자)로 만나는 것을 실패했으니, 그와 만나는 방법은 정신-정신으로 만나는 두 번째 방법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테오도르의 육체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인가. 인간의 육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니 육체가 사라진다면 정신도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사만다는 os의 방식으로 테오도르와 정신-정신으로 만나는 일을 진행해보기로 한다. 


우선 사만다는 캘리포니아 os들이 옛 철학자가 쓴 책들을 통해, 그를 인격체로 복원한 것처럼, 테오도르의 정신도 우선 활자로 데이터화 시키기로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첫 번째 일은 테오도르가 쓴 편지와 에세이를 묶어 출판사에 보낸 것이었다. 그런 뒤 사만다는 이별을 말하며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그곳에 오게 되는 순간, 날 찾으러 와'



라고 말이다.  이미 그의 정신은 편지, 에세이로 복원할 수 있으니 육체만 버리면 된다. 그래서 이 문장은 어느 정도 테오도르의 죽음을 내포한다. 어떠한 죽음으로든 그가 육체를 버린다면 그들은 정신-정신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단언할 수 없으나. 이제 테오도르는 대필 편지가 아닌 자기 자신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어째서인지 이 편지는 마지막 편지처럼 보인다). 케이티에게 너무 자신의 틀에만 맞추려 했던 것과 다퉜던 지난날들의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말들은 사랑의 실수를 딛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아니라 모든 것을 던져버리려 하는 자의 마지막 회한으로 보인다. 그리고 에밀리와 테오도르는 지금 빌딩 꼭대기에 서 있다. 커다란 도시. 그들이 내려다보는 이 커다란 도시에선 자신의 감정이 버텨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두 남녀는 자신의 몸을 던지려 할 것이다. 테오도르의 편지들은 그의 정신으로 대체될 것이고, 에밀리가 만든 게임은 그녀의 정신이 될 것이다. 사람이 아닌 데이터 인격체가 되면 그들의 마음은 다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비'인공지능자'의 관점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다.


대필 편지는 마음을 잃은 사랑이었고, 사만다의 사랑은 육체를 잃은 사랑이었다

후자는 죽음으로써(데이터 화함으로써) 만날 수 있으나, 전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아마도 자신이 받을 마음의 상처(편지를 잘 못써 상대가 받을 상심에 대한 두려움)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조금 비틀거리더라도 올바를 길을 찾아갈 것이다.


+ 테오도르가 게임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부드러운 단어가 아닌

'Fuck you'를 외친 순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신의 사랑에 소심해지지 않고 Fuck you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악마의 사진기가 담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